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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5월16일구약개관설교(78)열왕기서(27)유은산
    정효선 2012-08-23 00:00:00 120

    구약개관설교 (78)

    열왕기서 (27):열왕기하 11-1-3

    제목: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구테타

    다음 주 읽어올 본문 : 열왕기하 12장

     

    서론 : 하나님의 주신 혼인을 오용할 때 발생하는 큰 위기의 역사들

     

    *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유다로 시집감으로 발생하게 된 큰 사건

    1. 북 이스라엘이 정략결혼으로 시돈의 딸 이세벨이 시집옴으로 바알을

    섬기게 되며 그 영향력이 강해짐으로 북쪽 이스라엘이 큰 위기 가운데

    들어감. (왕상 16:31)

     

    2. 남쪽 여호사밧 왕이 자기 아들 여호람을 위하여 북 이스라엘의 공주인

    아달랴로 정략결혼하게 하는 큰 실수를 저지름 (대하1:, 왕하 8:16-18)

    3. 아달랴가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자 정권을 장악하여 모든 다윗의

    혈통을 없애고 6년을 통치함(왕하 11:1)

    15년간 태자비, 8년간 왕후, 1년 동안 왕태후, 총 24년 동안 있는 동안

    행해온 아달랴의 삶의 모습이 자기 손자들까지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남, 한순간 어떻게 일시에 왕궁을 장악하고 왕손을 죽이라는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도록 평소에 정권욕을 가지고 준비해온 아달랴!

     

    결론 : 하나님이 내신 혼인을 오용하여 만들어진 하나님 백성들의 참담한 역사

    항상 혼인을 앞두고 있을 때는 혼인의 결과 그 집안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갈 것인가를 예견하여 행동해야 한다. 단지 인간의

    조건과 행복으로 진행하게 될 때, 그 결과는 참담한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

     

    구약개관설교 (78)

    열왕기하의 메시지 (27)

     

    왕하11:1-3

    :1 유다왕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왕의

    집안 사람들을 다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2 그러나 요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죽임을 당하는

    왕자들 가운데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빼내어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겼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아달랴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3 요아스는 여호세바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 동안을 숨어 지냈습니다.

    그 동안, 아달랴가 이스라엘 땅을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오늘

    이 사건이다. 할머니가 자기 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어 6 년 동안

    다스렸던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오늘 이 심각한 정변을 일으킨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지금 세상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무엇이냐, 영적인 원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아주

    유심히 잘 봐야 한다.

    교안을 보면 서론이 이렇게 시작한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혼인을 오용할 때

    발생하는 큰 위기의 역사들이라고 되어 있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유다로 시집감으로서 우선 이 사건의 저 밑뿌리가

    시작될 수 있는 그 여지를 사실은 마련하게 된 셈이다. 아달랴가 남쪽 유다로

    시집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애당초 안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방나라의

    공주가 유다로 시집을 가게 된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이것보다 더 큰

    위의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뭐냐, 그 당시 흔히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정략결혼을 맺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짐

    으로 말미암아 바알 신을 대대적으로 섬겼던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시돈이라는

    나라와 북쪽 이스라엘이 정략결혼으로 서로의 평화안전조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시집온 딸이 바로 이세벨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시돈이라는 나라의 왕의 동생인데 바알을 대대적으로 섬기던 우상

    숭배에 익숙했던 아버지다. 그러다가 자기 형을 죽이고 시돈의 왕이 된 자다.

    이세벨은 어려서부터 그것을 보고 자랐다. 그리고 이제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속에서 3 년 반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던 엘리야 시대에 아합과

    자기의 딸 이세벨과 결혼을 시켰다. 그러니까 씨앗은 어디서부터 흘러 왔느냐

    하면 이방여인이 북쪽 이스라엘로 내려와서 남쪽 유다보다 좀 더 타락된 물줄기가

    어디까지 흘러 내려 왔느냐 하면 다윗 왕의 남쪽까지 이렇게 흘러 내려오는 형태를

    지금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방과 이스라엘이 혼인을 하고

    그 다음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이제는 남쪽 유다와 혼인을 하게 되는 이런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했을까? 왜 이러는 것일까? 그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면 남쪽

    유다 왕이 그것을 시도할 리가 없었을 터인데 남쪽 유다 왕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은 굉장히 경건한 왕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게 여호사밧이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다면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여호사밧은 성경에 보면 몇 안 나오는 굉장히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으로 기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과 함께 할 수 없이 연합전쟁을 펴

    나가면서도 곧 바로 전쟁에 나가지 않고 선지자를 불러서 물어 보자고까지 한

    사람이다. 그래서 죽을 번한 것을 하나님이 살려주고, 살려주고 하신 것은

    여호사밧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선지자) 너를 죽였을 것이다 라는 사건도 일어날

    정도인데 왜 이 왕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북쪽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기에는 일차적으로 북쪽 아합의 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남쪽에서 보니까 북쪽 이스라엘이 평상시에 늘 시달리고 있던 북방과의

    외침과 이웃나라와의 관계성이 그 결혼으로 말미암아 그쪽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비록 북쪽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이라고는 하나 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북쪽 이스라엘이 시돈 나라와 선린우호조약을 맺듯이 우리도 선린우호조약을

    맺으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이제 나타나는 양상인데, 중요한 것은 엘리야 시대에 아합 왕 때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죽었고 또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많이 도망간 실제

    상황들에 대한 본질적인 것을 여호사밧이 보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에 대하여

    그렇게 큰 가치 있게 평가를 내리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즉, 겉으로는 번영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그들의 신앙생활과 그들의 삶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선지자들이 북쪽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남쪽으로 많이 이민 갔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누구보다도 여호사밧 왕이 잘 알았을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이 그것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실 기대했던 것이 뭐였겠는가? 영향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오히려 줘야 하는 게 아니가, 선한 영향을 오히려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여호사밧이

    오히려 악한 영향을 받고 말았다는 게 이 여호사밧의 사건을 보면서 일차적으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그래서 교안을 보면 남쪽 여호사밧 왕이 자기 아들 여호람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공주인 아달랴와 정략결혼 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로

    말미암아 결국은 어떤 큰 비극의 씨앗을 심게 되었느냐 하면 자기 친정 집안에서

    봐왔던 그대로 아달랴가 남쪽 유다에서 행하는 것을 진행시켰다.

    신앙이란 그런 의미에 있어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봐야 될 것이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아주 피눈물 나게 성경은 분명히 권면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예견해 봐라 라는 것이다.

    다른 부분은 유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 상황이 되면 믿음의 내용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이것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왜 그렇게

    중요하냐, 그의 가치관이 어려서부터 무엇에 의하여 결정되느냐가 그대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보고 들은 것에서부터 떨쳐내기가 매우 어렵다. 출발부터 점검해 보라, 이세벨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 동생을 죽이고 어떻게 왕위를 쟁탈했는지를 봤다.

    세상에서는 왕가에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가 잡은 위치가 아니면 죽는 위치에

    있게 된다. 문제는 세상나라에서는 그럴 수 있다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나라와 같은 원리로 완전히 망쳐버린 게 바로 아합 왕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를

    여호사밧은 크게 보지를 못했다. 오히려 외적으로는 나라가 평안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좋아 보여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세상나라 왕의 비슷한 것과

    바꿔버리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느냐를 짚어나가기 시작한다면 굉장히

    많지만 성경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아예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가치관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어쩌겠는가, 북쪽은 그렇다

    고 하더라도 성경이 통탄하는 것은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각성이 있는 사람이, 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 자기네 나라를 움직여나가고,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아!

    지금 북쪽 이스라엘의 공주를 데리고 오면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하는 것을 예견을 할 그때에 신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될 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안 3번을 보면 아달랴는 15 년 간 왕자 여호람의 태자비로 있었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자 자기 남편 여호람이 왕이 되어 8 년 간 왕후로 있었다.

    그러다가 여호람이 죽자 자기 아들이 1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서 북쪽하고 같이 전쟁하러 나갔다가 예후 손에 자기 아들이 죽었다. 이때가

    이 여인의 나이가 40세였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자기 손자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그의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반기를 들 수 있는 틈도 없이 한순간 일시에

    왕궁을 장악하고 왕손을 죽이라는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도록 평소에 정권욕을 가지고 준비해온 아달랴는 모든 다윗의 혈통을 없애고 6 년 간 통치하다가 46세에 죽임을 당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아하시아의 아들)요아스와 유모를

    고모가 빼내어 침실에 숨기고 성전에서 요아스는 고모와 함께 6 년을 숨어 지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을까, 자기 남편이 왕이 되고 왕후의 자리에 오르고 북쪽에 있는 자기 친정하고 늘 가깝게 연락하고 지내는 과정을 통하여

    자꾸만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결정판이 뭐냐, 오늘의 이 사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서운 것이 있는데 조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거리낌도 후회되 없다. 그래서 강력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 사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쉽게 얘기하면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믿음의 집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다윗의 혈통 가운데 속에서 일어

    났다는데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될 교훈은 뭘까, 교안의 결론을 보면

    하나님이 내신 혼인을 오용하여 만들어진 하나님 백성의 참담한 역사라고 그런다.

    항상 혼인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 혼인의 결과 집안이 하나님의 관계에서 어떻게

    갈 것인가를 예견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단지 인간의 조건과 행복으로 진행하게 될 때 그 결과는 참담한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탄이 파고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아 홍수의 큰

    배경이 되는 창세기 6 장을 보면 온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과 함께 혼인함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그런 모습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일차적으로 가져야 되는 것은 개인적인 혼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혼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자녀들의 가치관이

    우리 부모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것은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늘 태도로서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 가치관을 고수해야 한다. 그 여인이 우리 집안에 들어와서

    어떤 것이 이루어졌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아들의 눈에 왜 저 여자가

    좋아 보였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게 그 정도의 수준 밖에 안 되니까 이것이 사실은

    더 답답한 것이다. 오늘 이 사건에 있어서도 제일 답답한 사람이 누구냐, 영적으로

    마땅히 깨여 있는 위치에 있었던 여호사밧, 영적으로 다르게 선택할 수 있었던

    여호사밧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어쩌겠느냐 만은

    그러나 그것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것을 강력하게 제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런 영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제일 큰 아쉬움이다. 왜냐, 다른 사람은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단순히 한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한 가정, 한 가정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로 보는 것이다. 교회의 제일

    작은 분자가 가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하시고 부부가 하나 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의 제일 작은 단위의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신다.

    오늘 여기 유다라는 나라가 어떻게 해 가지고 이렇게 왔느냐, 다른 것 말할 필요

    없이 자기들이 누구냐 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내가 누구냐, 일개 하나의

    가정이 아니고, 일개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의 나라로서 나에게 이 나라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길 수 있는 위치로 나에게 왕위를 허락하셨다는 그런 각성이 있었다면 절대로

    여호사밧은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칭찬도 받았다. 나름대로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정이 일반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가정과 우리를 가정으로

    만들어 놓은 것과는 목적이 다르다 . 하나님의 이 땅의 나라로서, 하나님의 교회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지어 낼 그런 분자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인은 신성한 것이고, 거룩한 것이고, 주님이 친히 주관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가정에서 태여 난 아이들을 유아세례를 주는 이유가 하나님의 가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문이 내대에 와서 동강내고 세상의 가문으로 나가게

    만드는 이런 전환점으로 맞이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여호사밧이다.

     

    오늘 이 말씀을 끝까지 가만히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셨던 가장 크고

    깊은 내용 중의 하나가 정반대의 모습으로 이렇게 이루어지고 마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을 보면서 각자가 받을 수 있는 교훈이 많다. 특히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에 자녀들을 위하여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며 영적으로 한 걸음 더 설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청년시절 부모를 통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정말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자신들의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하고 미래를 주님 손에 맡기고

    나아가는 사람으로 내가 변화되어야 그런 며느리를 들여올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만큼은 정말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

    여호사밧을 그런 영적 위치에 세웠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영적 어른의

    위치로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정에 세워 놓으신 것은 아닐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튼튼히 세워지는 그런 방향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해 달라고, 또 마땅히 그런 위치에 있는 분이 그 일을 해야 되겠지만

    그 일을 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안타가운 마음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할 때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녀들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실 것이다. 내 아들, 딸들이 누구를 데려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여호사밧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남송교회가 진행 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많이 깨여

    있고 마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되는 그런 부분에 우리가 약한 자신들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정말 영적인 각성과 영적인 위치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

    나가는 영적인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2년5월23일구약개곤설교(79)열왕기서(28)유은산 정효선 2012.08.27
    2012년5월2일 구약개관설교(77)열왕기서(26)유은산 정효선 20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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