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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5월23일구약개곤설교(79)열왕기서(28)유은산
    정효선 2012-08-27 00:00:00 119

    구약개관설교 (79)

    열왕기서(28):열왕기하 11:21-12:1-3

    제목: 요아스의 미흡한 신앙개혁

    다음 주 읽어올 본문:열왕기하 13장

     

    서론 :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앙의 선조들이 있을 때 집중할 일들,

    * 요아스의 일생의 흐름

    1. 죽을 운명에서 고모(여호세바)와 고모부(여호야다 제사장)의 보호로 살아남음

    7세 때 아달랴를 쫓아내는 제사장 혁명으로 왕이 되어 여호야다의 후견 아래

    훌륭한 신앙적 업적을 이룬 시기 (왕상 11:11-20,12:4-16)

    가) 아달랴로 말미암은 바알 신당과 제사장들을 쫓아 냄.

    나) 모든 영적 질서를 회복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음

    (성전수리)

    2. 여호야다가 죽자 신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아세라를 섬기는 모습으로 변화

    (대하24:2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자 오히려 성전 뜰에서

    죽임 (대하 24:17-22)

    3. 왜 요아스가 37 년 간 이나 잘하다가 여호야다가 죽자 몇 년 안에 변했나?

    근본적인 신앙생활의 초점: 신앙생활의 정신과 초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금방 변질되어 다른 것을 추구해 나가게 된다.

     

    결론 : 외적인 형식을 갖추는 것에서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쁨으로 발전

    하지 못하면 세상이 주는 것들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기쁨

     

    -------------------------<>-------------------------------

     

    구약개관 설교 (79)

    열왕기하의 메시지(28)

    왕하 11:21-12;3

    11:21 요아스는 그의 나이 일곱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12: 1 요아스는 예후가 이스라엘 왕으로 있은 지 칠년 째 되던 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사십 년 동안을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는데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사람인 시비아입니다.

    :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가르쳐준 대로 여호와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 3 그러나 신당은 없애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은 여전히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향을 피웠습니다.

     

    교안을 보면 요아스의 미흡한 신앙의 개혁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 일반 세상나라의

    왕에 대한 지적을 평가할 때는 왕국을 어떻게 행정을 하고 외교를 어떻게 해서

    어떻게 부국강병에 힘썼고 어떻게 부강하게 했고 등등의 내용을 쭉~ 기술 태마로

    잡고 진행을 한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왕에 대해서 평가 기술하는 초점과 방향은 완전히 차이가 난다. 성경이 그렇게 기술하는 이유는 인생을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가, 그 가치를 보는 관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관점에서 제일 먼저 지적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의 상태다. 왕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려고

    하는 정책과 내용을 얼마만큼 펼쳤는가, 여기서 이미 탈락되면 나머지 그의 치세동안에 있었던 부강이나 물질 풍요나 강한 군사력 이런 것은 아예 기술도 안 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 기술하느냐 하면 선지서에서 볼 수가 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했던 여로보암 2세라는 왕 때인데 “바산의

    암소들아“ 하면서 그들의 부강한 것들이 정신이 잘못 되니까 부강할수록 퇴페하고

    더 타락한 모습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보는 관점에

    서는 얼마만큼 잘 살았는가, 또 얼마만큼 외적에 시달리지 아니하고 평안하게

    살았는가를 주로 보는데 성경 저자들의 주 관점이라는 것은 성경이 사람을 평가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보실 때 이 사람이 어느 만큼 가치 있게

    살았는가 그리고 이 사람이 어느 만큼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면서 유익한 영향력

    을 주었는가를 평가할 때 그가 그 영혼과 그 마음 가운데 정신이 타락되어 있으면

    나머지 그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은 타락의 도구에 불과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요아스의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깨닫는 바가 아주 크다.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다.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너희가 가문이 좋으냐,

    문벌이 좋으냐, 학력이 좋으냐, 세상 사람과 비교해서 가진 것과 모든 것들이

    다 부족하지만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살 때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들어서 유명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도구가 되게

    하셨다. 특별히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거기에 나오는 사도들, 베드로, 요한 등등

    제자들의 이름이 쭉- 나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따져 볼 때는 그 시대 사람들이 알아 볼 때는 사도들, 베드로 요한

    같은 사람은 아예 누군지도 모른다. 유명도를 따져 본다면 로마의 황제나 귀족들

    유대족속의 귀족들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역사가 지나가고 난 뒤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전 세계를 정복했던 그런 왕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들이 한 연설문이나 그들이 한

    내용과 그 왕족들은 지금은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된 일을 한 사람, 하나님을 알고 살아온 사람들의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인생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진행하는데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가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요아스에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은혜를 주신 것은 뭐냐,

    망할 수 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그가 살아났고

    나중에 왕이 되었다. 요아스는 태여 나자마자 죽을 운명으로 태여 났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할머니가 자기 아들이 죽은 뒤 구테타를 일으켜서 왕의 계승

    서열에 올라갈만한 사람들은 손자들이라 할지라도 모조리 죽었다. 그 와중에 유일

    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요아스다. 요아스는 고모와 고모의 남편 여호야다라는 90

    여세 된 제사장이 숨겨 성전에서 자랐다. 7 세에 왕으로 즉위 했지만 실질적으로

    자기의 지혜와 능력으로 다스린 것은 아니다. 그를 후견하는 여호야다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가도록 한 것이다. 여호야다의 말을 듣는 동안

    에는 요아스가 아주 멋진 왕으로 서 있었다. 여호야다는 130 세에 그리고 요아스는

    40 세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세우신 첫 번째 자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요아스가 세움을 받았는데 유일하게 일반 사람들은 못 들어가는 성전에 숨어서

    자랐다. 그래서 요아스에게는 성전이 피난처였지만 사실은 축복의 장소인 성전에서

    7 년 동안 살아온 기가 막힌 운명이다. 태여 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모부가 구하여 7 세가 되도록 숨어 살았으나 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최고로

    좋은 곳에서 늘 찬송을 들으며 사무엘 같이 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곳에서 자랐다. 고모부 여호야다가 그 7 년 동안 준비를 해서 혁명을

    일으켰다. 아주 특이한 것은 군인도 아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혁명이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도 자기 엄마가 섬겼던 바알 종교를 계속 장려함으로써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을 자기의 정치적인 기반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섬긴 사람들은 언제든지 다윗 왕의 계통을 따라갈 테니까 자기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바알 종교를 융성하게 만들어야 함으로 여호와를

    섬긴 사람들은 중용에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 혁명을 일으켜서 아달랴와 바알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몰아내게

    되고 이제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꼭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문벌 좋고 세상에서 꽤

    괜찮은 위치에 태여 나 이 자리까지 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님의 부르심을

    보면 이 땅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설 수 있는 큰

    은혜는 내가 믿음과 신앙에 붙잡혀 있을 때 세상적 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바로 설려고 애를 쓰는 그것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 그것 밖에 모를 때, 그러니까 요아스가 7 세 동안까지

    성전 밖에 나와 본적이 없는 오로지 자기의 삶이 그것이다. 요아스는 왕자로

    태여 났어도 비천한 위치에서 복음의 은혜가 들어가서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 밖에 안보여서 어릴 때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서 여호야다가 옆에서

    잘 참모해 주되 그때는 요아스가 아주 멋진 개혁을 했다. 사실은 자기 내면에서

    부터 나온 개혁은 아니었지만 순종함으로 했다. 그래서 바알의 신당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여호와 앞에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있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성전 안에서 모든 일을 맡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반차를 따라서 모든 질서와

    직분을 회복시켰다. 그런 질서를 잘 회복시키는 것의 하이라이트가 뭐냐 하면, 성전

    수리 사건이다. 단순히 어느 곳에 구멍이 뚫려서 고쳤다 이런 정도가 아니고 그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하게 한 것의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성전 청결 사건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잘 세웠다는 것이다. 이게 외적으로 아주 기가 막힌 것이다.

    그런데 나이 40 세가 되었다. 그때 마침 자신의 신앙적 후견인, 영적인 아버지,

    그리고 정치적 후견인 여호야다가 죽었다. 이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까지는 역대하

    24:2절 말씀을 보면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이 표현을 아주 깊이 명심해야 한다. 교안에

    나와 있듯이 여호야다가 죽자 신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아세라를 섬기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역대하 24:15절을 보면 “여호야다는 점점 늙어갔습니다. 그는 130 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37 년 전 93 세 노인이 자기의 조카 요아스를 살리려고 성전에 숨기고 돌봐 준 게 아니겠는가, 37 년 동안

    요아스가 성장할 때까지 어쩌면 하나님이 여호야다를 불러 가시지 않으신 것 같다.

    그런데 왜 고모부가 죽자마자 1 년 만에 요아스가 변했을까?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이다. 요아스가 변한 것 중에 더 안타가운 것은

    고모의 아들이 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선지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제사장이다 )가 백성 앞에 서서 “..... 너희가 여호와를 저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저버리실 것이다“라고 했다하여 그것도 다른데서 죽인 게 아니고 성전 안에서 돌로 때려 죽였다.

     

    대하24:19 여호와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려

    했지만, 백성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20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에게 내렸습니다.

    스가랴가 백성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명령을 어기느냐? 너희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여호와를 저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저버리실 것이다.“

    :21 하지만 왕과 그의 관리들은 스가랴를 해칠 궁리를 했습니다. 왕은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스가랴를 죽이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관리들이

    성전 뜰에서 스가랴에게 돌을 던져, 그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22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잘 해 준 것을 기억하지 않고,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습니다. 스가랴는 죽기 전에 “여호와

    께서 왕의 하는 일을 보시고 그대로 되갚아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요아스는 신앙적이지 않을뿐더러 배은망덕했다.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잘 해 준 것을 기억하지 않고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초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아서 진행하는 동안에는 그의 신앙이 붙들려 있었지만 그의 신앙을

    가리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떠나자 자기 신앙의 것이 아니니까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순종하며 하기는 하지만

    그의 정신과 핵심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본질이 없어 그의

    영혼의 기쁨과 만족이 있어야 함에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다

    순종하는 것 같지만, 그의 정신과 본질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기쁨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을 점점 확장해나가는 인생의

    사명과 목표가 자기의 것으로 되지 아니하고 남의 것으로 듣고 따라 가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세상이 우리에게 늘

    유혹하는 큰 내용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되는가? 한마디로 얘기하면 우리 정신이

    깨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함의 즐거움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 나도 좋아져야 되고 그로 말미암아 나에게 기쁨이 있어야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을 눈에 보이는 그림 형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준 게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움직일 때 성막 위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있었지 않느냐,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서 천막도 같이 움직였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과 동행함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신약에서는 임마누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의 내면의 상태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어떤 상황이 벌어지

    더라도, 그러니까 좋은 일을 만날 수도 있고, 나쁜일을 만날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을 만날 수도 있고, 사업에 힘든 일을 만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무슨 일이

    되었던 내가 그것에 반응하는 내용이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면 그것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관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의. 식. 주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즉 하나님과 관련해서 그것을 풀고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

    하며, 그래서 그것이 극복하는 일이든 승리하는 것이든 아니면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되었든 내 영혼은 점점 주님께로 향해 나가야 된다. 내 마음에

    주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고 은혜가 있어서 고침이 있고 진전됨이 있고,

    그러다보니까 나는 부족하고 작지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그것이 예배가 되었든, 전도가 되었든, 목장이 되었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 마음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행해 나가시는데 이 부분에 나로

    하여금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영혼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채워져 나가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는 기쁨, 만족, 즐거움, 이런 것이 없이 무덤덤하게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척으로 지내다가 세상의 즐거움과 재미가 탁 들어오면 아주 재미가 쏠쏠해진다. 이것이 가치가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가치는 가질 수 있지만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하나님 나라의 주는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우리가 그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지 요아스처럼 열심히 하지만 마음의 상태는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세상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상태 안에 있을 때가 오히려

    그 영혼은 안전했는데 이제는 왕으로서 여호야다가 옆에 없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고 결정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갔지만, 그래서 마음껏 선택

    할 수 있는 위치에는 올라갔는데 그의 영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없으니까 하나님 쪽으로 추구하기보다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나갔다. 이것을 요아스가

    즐겨했다는 것이다.

    그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얘기다. 신앙생활이란 내 영혼의 본질적인

    모습을 봐야한다. 외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느냐,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요아스처럼 성전을 이렇게 아름답게 개혁한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 다윗 이래로 엄청난 일을 했다. 이런 신앙적인 일을 하면서도 그 영혼

    에는 기쁨이 없을 수 있다고 성경이 지금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다시 마음을 모으는 것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었기에 내가 이만한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치 요아스가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였으면 나는 죽었어“ 이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는 내가 성전에서 7 년 동안 이렇게 자라났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왕들하고 비교해 볼 때 나 같이 이런 은혜를 받아 본

    사람은 없을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우리들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을 보면서 내가 이 자리가지 온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들

    하는가? 각자 인생을 가만히 돌아 볼 때 세상의 뭘 얼마나 누렸느냐, 얼마나 즐거

    움이 있었느냐 보다는 현재 위치에서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은혜가 참으로 많지

    않았던가? 덤이 본질은 아니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붙들려 있을 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마치

    솔로몬에게 “네가 나에게 합한 것을 구했으니 구하지도 않은 것까지 주겠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세상이 우리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오늘날 뭐라고 평가할지는 몰라도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 나도 같이

    하려고 애를 쓰면 베드로와 바울과 요한처럼 하나님 나라에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된다면 세상에서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때로는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도바울의 말 같이 “나는 모든 일에 자족하고 내가 높이 되도 하나님께

    영광이요 낮게 되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런 인생을 우리 모두가 같이 살아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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