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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6월20일구약개관설교(80)열왕기서(29)유은산
    정효선 2012-09-17 00:00:00 121

    구약개관설교(80)

    열왕기서(29): 열왕기하 13:14-21

    제 목 : 죽음까지 사용되는 복된 엘리사

    다음 주 읽어올 본문: 열왕기하 14, 13:10-13

     

    서론 :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끝까지 의뢰해야 하는 하나님 백성

     

    *엘리사의 죽음에 임박한 상황과 뼈 사건의 메시지

    1.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병문안과 부르짖음의 마음 (14절)

    가)엘리사를 인정하고 그 역사를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 (14절)

    나)엘리사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뢰를 불러 일으키려함(17절)

    : 화살을 쏘라고 하면서 엘리사가 하는 말의 내용

    다)땅을 치라는데 요아스의 반응에서 나타난 가장 근본적인 문제 (18절)

    :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말씀을 갈망하지 못하는 요아스의 삶의 태도

     

    2. 엘리사의 무덤의 뼈 사건이 보여주려는 상징과 메시지는 ?

    가)이와 같은 기적은 성경에 한군데도 없는 독특한 사건 :하나님의 메시지

    나)엘리사의 사역들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 죽은 자와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 놓으려는 것이 엘리사의 일생이었다.

     

    결론: 제사장제도가 무너진 이스라엘의 근본적 환경 가운데 선지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공급하셨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한 잠시 잠시 살아나는 것에 불과 했었다. : 근본적인 변화된 구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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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개관설교 (80)

    열왕기하의 메시지 (29)

    왕하 13:14-21

    :14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가서 울며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전차와

    기마병이여!“

    :15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말했습니다. “활과 화살을 가져오시오.” 그가 활과

    활과 화살을 가져왔습니다.

    :16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활을 잡으시오.” 그가 활을 잡자,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습니다.

    :17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동쪽 창문을 여시오.” 그가 창문을 열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쏘시오.” 요아스가 활을 쏘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아람을

    이길 여호와의 승리의 화살이여! 왕은 아벡에서 아람 군대와 싸워 이기고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오.“

    :18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활을 잡으시오.” 그가 활을 잡자, 엘리사가 말했습

    니다. “땅을 치시오.” 요아스가 세 번 땅을 치고 그만두었습니다.

    :19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화를 내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대여섯 번 치지

    않았소? 그렇게만 했으면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크게 이길 수

    있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고작 세 번밖에 이기지 못할 것이오.“

    :20 엘리사가 죽어 땅에 묻혔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압 나라의 도적 떼가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왔는데,

    :21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시체를 묻고 있던 중에 도적 떼가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사모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인생을 이렇게 복되게도 사용 하시는구나할 때 가슴을 뛰게

    만든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곁에

    두셨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 것인가, 또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원리는 같은 하나님이시니까 우리를 다루

    시는 원리가 동일하게 오늘도 반복 된다는 것이다. 사건은 다르고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은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던 그분의 마음, 일하시는

    방법, 원리, 이런 것이 형태는 달라도 같은 하나님이시다. 또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오늘날

    에도 계속해서 이루어져 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봐야 될 것은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또 당신의 백성들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행하시는데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복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또

    그런 은혜가 왔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것이 긍적적인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이런 것을 통하여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선 엘리야 선지자의 후계자가 되는 엘리사가 임종이 다가 왔다. 그리고 구약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그의 아들 여로보암 때에 남북으로 왕조가 갈라져 내려

    오고 있는데 북쪽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였던 여로보암이 독특한 죄를 졌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보면 항상 그 다음 왕들을 평가할 때 여로보암 왕이 했던 것을

    답습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놓고 늘 평가를 하고 있다.

    엘리사와 같이 있었던 그 요아스에 대항 평가하는 전체적인 평가의 내용이 13:10-

    13절까지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요아스가 유다의 왕으로 있은지 37년째 되던 해에

    .....그러니까 7세 때에 왕이된 유다의 왕 요아스가 있고 오늘 여기 나오는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동명이인이다.

    .....요아스가 유다의 왕으로 있은지 37년째 되던 해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

     

    그러니까 유다 왕 요아스가 37년을 다스리고 있을 그때의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의

    이름도 요아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 나라의 16년 동안 다스렸던 요아스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보면

    13:11 그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그는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라고 이렇게 한마디로 북쪽 초대 왕 여로보암이 행했던 그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라고 지금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모든 북쪽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항상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보면 끝에 가서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라 했더라 라고 후렴처럼 늘 붙어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엘리사의 임종 때 요아스와 있었던 사건이다. 요아스가 엘리사

    에게 병문안을 와서 하는 말이 “당신이 없으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느냐는 것이다”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왜냐하면 북쪽의 많은 왕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는데 지금 요아스 왕은 엘리사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하니까 잘 되었다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이스라엘 왕이지만 실제로 자기 나라를 지키는 마병과 병겨가

    누구냐, 우리나라의 제일 보물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가서 울며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전차와 기마병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다.

    요아스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베푸신 구원에 대하여 그

    능력과 은혜만은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람 왕과 신하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의논하는 내용을 엘리사에

    게 하나님의 영으로 가르쳐줘서 요아스에게 어디서 어디를 대비하라 일러주던 엘리사가 있었음으로 인하여 아람 나라로부터 보호받았던 사건들이 몇 번 있었기 때문

    이다. 이 사실을 안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러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무서워 떨고 있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불말과 하나님의 병거가 어떻게 그 성을 지키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 함으로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다 죽일 수 있는 상황인데

    우리의 힘으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니까 그 포로들을 다시 보내줬던 이런 역사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역사 가운데 속에서 사실은 주변에 있던 큰 대적인 아람 왕은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군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제일 두려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그것을 아는

    것이다.

    엘리사는 찾아 온 요아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엘리사의 마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왕을 바로 세우고 싶은 것이다. 엘리사의 이 모습에서 누구의

    모습을 봐야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여기시는 것을, 다시 말해서 어떤 표현이

    냐하면 내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최소한 인정하면서 그 은혜가 내게 필요합니다라고 엎드리는 자를 외면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의 상징인 것이다.

    15절: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말했습니다. 활과 화살을 가져오시오. 그래서 그 왕이

    자기가 쓰는 활과 화살을 가져온다.

    16절: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활을 잡으시오. 그가 활을 잡자 (이 장면이 너무 감동

    적이다) 왕이 화살의 실을 보면서 당기는데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여 준다.

    잡아 당겨 쏘는 것은 왕이지만 그것에 힘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축복의 손이다. 바로 이거다.

     

    오늘 우리의 삶이 바로 이래야 된다. 우리가 나가서 일은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지만 내 손 위에 주님의 손을 얹으시는, 이 삶의 비결을 마지막 운명하면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이스라엘 왕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그가

    그나마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가지고 왔을 때 마지막 엘리사가 온 힘을 다하여

    그 왕에게 전수해주고 싶은 삶의 비결, 그 손 위에 엘리사가 손을 얹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지에 대하여 말로서 설명을 해주는 장면이 17절에 나온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동쪽 창문을 여시오, 동쪽 창문은 뭐냐하면 아람 나라쪽을

    의미한다. 적군이 있는 그쪽 창문을 열라는 것이다. 창문을 열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쏘시오, 요아스가 활을 쏘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이 상징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말을 함으로서 요아스가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신앙을 불러일으

    키는 자리로 끌고 올라가려는 엘리사의 깊은 사랑의 권면의 내용이다(어쩌면

    엘리사의 유언이기도 하다).....아람을 이길 여호와의 승리의 화살이여......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당신이 이제 쏘는 것은 당신의 화살이 아니고 여호와의 승리의 화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것은 엘리사가 그 다음 요아스에게 말할 때 적용을 했어야

    하는데 요아스의 신앙이 따라주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내 이 화살이 여호와의

    화살이라면 내 활도 물론 여호와의 활이 될 게 아니겠는가, 엘리사가 손을 얹어

    주면서 쏘라고 했던데서 한 걸음 나아가 이제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살은 같이 쏘고는 엘리사가 활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했다. 엘리사의

    손까지 얹어줌으로 여호와의 화살을 경험했으니 엘리사가 떠나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이제는 활을 가지고 땅을 내리쳐라라고 했다. 그런데 온 힘을 다해서

    쳤어야 하는데 시늉만 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승리의 화살이라면 이 활은 여호와의 활이 되니까 땅이 갈라지든지 이 활이 부서지든지 이것 붙들고 온 힘을 다해 내리쳤어야 하는데 3번만 쳤다 시늉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 엘리사가 너무 아쉬워하면서 겨우 왕 시대에 그걸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을 그냥 보호하는 정도의 세 번승리하고 끝났다는 것이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실제로 엘리사가 죽고 난

    다음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열왕기를

    기록한 사가가 한 가지 사건을 더 붙였다. 엘리사가 죽은 지 약 2년 쯤 지났을

    때 이미 엘리사의 무덤에는 뼈만 남았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장례식을 하고

    있는데 모압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시체를 던졌는데

    마침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던져진 시체가 살아나서 나오는 것이다

    (본문21절)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역사다. 하나님이 하시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심어져 있는 것을 봐야한다.

     

    교안을 보면 엘리사의 죽음이 임박한 뼈 사건의 상황과 뼈 사건이 메시지라고

    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병문안과 그의 부르짖었던

    마음을 엘리사가 인정하고 그 역사를 존중하는 그런 마음을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표현했을 때 여호와의 승리의 화살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요아스의

    반응에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갈망하지 못하는 그의 삶의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요아스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자기가 주도적으로 신앙의

    자리로 못 들어가 있을 때 주시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다.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이

    라는 것을 한번 경험했으면 그 다음은 그 활을 붙들고 정말 온 힘을 다 들여서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당시의 그 왕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도 그대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그때그때 맛보고 은혜를 맛보지만 근본적인 내 삶의 구조를 바꿔놓지 않으면 은혜를 받고도 시간이 지나면 옛날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 현실적 상황 가운데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때그때 임기응변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치지 말라는 것이다. 내 삶의 구조의 바뀌어 짐이 없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되풀이 되고 반복되어지기 때문에 그때 잠간 회복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전체적인 방향이 진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기나 열왕기서를 보면 그때그때마다 힘들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면

    그걸로 구원받고 조금 있으면 또 힘들어지고, 왜 똑같이 그렇게 반복되서 나오고

    있느냐 그러니까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은혜가 떨어지면 다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은혜를 받았을 때 치고 올라가야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치고 올라가느냐, 내가

    은혜에서 안 떨어질 수 있도록 내 구조를 거기에 가져다가 딱 박아 놔야 한다.

    그걸 요아스가 못 했다는 것이다.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로보암이 구축해 놓은 체제를 북쪽 이스라엘 왕들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초대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구축해 놓은 아주 잘못된 체제가 뭐냐하면

    명절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르칠 수 있는 레위 출신인

    제사장들을 모두다 해직시키고 평민 출신으로 아무나 제사장을 삼았다. 그리고는

    벧엘과 단에다가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경배하도록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르치고 백성들을 지도할 수 있었던 제사장들이 북쪽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까

    모두 남쪽 유다로 종교적 망명을 갔다. 그래서 남쪽 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

    밖에 없지만 상시적으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배울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때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가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붙잡힐 수 있는 신앙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기본적인 그 구조를 허물어 놓았다는 것이 여로보암의 가장 큰

    죄였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대체가 뭐냐하면 선지학교라는 것이다. 이 선지학교가 남쪽

    유다에는 없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은 뭐가 생겼느냐,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그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나중에 이 선지자들도 제대로 활동이 잘 안되니까 여로보암 2세왕 때는 남쪽에

    있는 선지자가 북쪽가지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이러한 모습으로 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뼈가 살아나는 얘기는 뭐냐, 물론 개인적으로 살아난 사람은

    큰 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죽어서도 엘리사를 생각하겠금 하는 중요한 간증

    꺼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를 통해서 하고 싶은 메시기가 뭐냐는

    것이다. 즉 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살리는

    역할을 계속하신다는 메시지다. 지금 한 사람을 매장하려고 갔던 모습이 바로 영적

    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너희들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은 은혜를 베푸셔서 죽어 있는 엘리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여호와께로만 돌아온다면 죽은 자를 통해서도 살리시는 그런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

    다 하는 것이 이 사건을 붙여 놓은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교안 결론 부분을 보면 제사장 제도가 무너진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환경 가운데

    선지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공급하셨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한 잠시잠시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죄에서 떠나지

    못 했으므로 근본적인 삶의 구조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것을 가져오지 못하면 그때그때 은혜는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반복되는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지나간 세월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볼 때 어느 때는 내가 은혜받아 정말 영적인 마음의 기쁨이 있었고 조금 지나면 또 반복되는 이런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마치 여로보암과 같이 구조적으로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계속 왔다갔다 하겠구나라고 여겨지는 게 뭔지? 사람에 따라서 누구는 시간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 인생의 가치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물질에 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안다, 내가 요것만큼은 헌신해야 되는데라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고 또 다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깨여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죽으면 죽으리라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활과 화살인데, 그 위에 엘리사의 손을 얹으셔서 화살을 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내 손으로 하는 일에 하다가 시늉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에 전부 다 걸었다

    왜? 하나님이 그 화살에 구원의 화살로 만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다 죽어서

    던졌는데 뼈에서도 붙어서 살려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이제는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께 내 인생을 온전하게 드리는,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들에 대하여 온 힘을 다해 하다가 말면 다른 것을

    의지하지 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지 않으면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주께서 나를 박대하시면 갈 때가 없습니다이다.

     

    왕이 활을 두세 번 치고만 것은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 시늉만 내지 말고 우리에게 맡긴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라고 하사는구나, 그런데 지금의 내

    인생단계에서는 은혜를 경험하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그 받은바 은혜가 왔다갔다하는 그런 은혜가 아니라 확실하게 믿음의 승리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복된 기회

    라고 여겨 마지막 임종하는 순간에도 이런 멋진 신앙의 권면을 하는, 우리가 이런

    체험을 하고 이 은혜를 맛본 자가 나중에 후손들에게 엘리사가 했던 것처럼 자손의

    손을 잡고 이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네 손 위에 내가 지금 손을 얹는데

    요아스 왕에게 엘리사의 손을 얹었든 그 손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그래서 우리들의

    추도예배할 때마다 마치 무덤에서 살아나듯이 후손들이 우리들의 신앙을 생각하면서 그 신앙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을 많이 자녀들에게 심어주고 그래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하나하나 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살아갈수록, 신앙의 추억할 꺼리들이 생각나서 그것을 다시 손자 손녀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는

    추도예배가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풍성한 꺼리들이 많은 이런 축복이 우리 모든 가정에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6월27일구약개관설교(81)열왕기서(30)유은산 정효선 2012.09.22
    2012년5월23일구약개곤설교(79)열왕기서(28)유은산 정효선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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