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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3월26일구약개관설교(135)시편(1)유은산
    정효선 2015-02-23 17:54:43 54

    구약개관설교(135)

    시편(1): 시편 13편

    제목: 개인 간구기도 시

     

    1. 시편의 큰 유형 6가지 장르

    * 개인 간구 탄식 시 (4,6,13,26,130편)

    * 개인 감사 시 (30,31,32,40,116편)

    *이스라엘 (공동체)간구 탄식 시(44,74,79,80,83편)

    *이스라엘(공동체) 감사 시 (66,98,100,124,129편)

    *찬양 시 (8, 29,96,114,136편)

    *이스라엘 왕의 (메시야) 시 (2,20,21,45,72,110편)

     

    2. 시편 13편

    1a 언제까지, 여호와여, 당신은 나를 잊고 계실 것입니까?

    1b 언제까지 당신은 숨어 계실 것입니까?

    2a 언제까지, 내가 걱정해야 합니까?

    2b 언제까지, 내가 날마다 슬퍼해야 합니까?

    2c 언제까지, 원수가 나를 보고 우쭐되어야 합니까?

     

    3a 나를 보시고 내게 대답해 주소서, 오 주님, 나의 하나님이시여!

    3b 내 눈을 밝혀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음의 잠을 잘 것입니다.

    4a 나의 원수가 “내가 이겼다”라고 말하게 못하게 해주소서

    4b 나의 원수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쓰러질 때

     

    5a 그러나 나는 주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습니다.

    5b 내 마음이 주님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6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아 언제까지? 라고 절규함, 최악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기도 중에 감사와 찬양으로 전환점을 마련

    하고 있다.

    ----------------------------<>-------------------------------

    교안을 보면 1a,1b2a,2b....... 이렇게 분석해 놓았는데 1절 상반절, 1절 하반절,

    2절 상반절, 2절 하반적이라는 뜻이다.

     

    시편은 전부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이 150편을 6가지의 주제로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한 개인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내용

    (2) 공동체가 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내용

    (3) 개인이 감사하는 내용

    (4) 공동체가 감사하는 내용

    (5) 찬양의 내용

    (6) 기름 부은 자들에 대한 내용(왕의 시라고 해서 메시야로서의 기름 부음)

     

    그리고 6가지 주의 대표적인 시를 괄호 안에 5개씩 넣었다. 전체를 다루기는

    너무 많고 개인 간구 중에서 대표적인 시편13편을 다루려 한다. 이외의 시편의

    시를 읽어 내려가도 형태나 말의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답답한 마음으로 나왔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나왔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는

    내용이 시편의 시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내용을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면 아마 큰 은혜가 될 것이고 또 시편에 있는 분들의 심정으로도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보면은 먼저 절규로 시작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기대는 하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아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점점 마음은 약해지고 답답하고

    상황은 절박할 때의 마음의 표현을 무려 1절, 2절 두절에 다섯 번이 나 나온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내용을 아뢰이기 전에 그 답답하고 내가 말 안해도 내 심정이

    다 함축해 들어가 있는 표현으로 먼저 아버지! 주여! 하나님! 이렇게 부르짖듯이

    “여호와여 언제까지 나를 잊고 계실 것입니까?” (1a), 또는 언제까지 숨어 계실

    것입니까?“(1b),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마음 가운데

    가장 큰 힘들어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즉 신앙생활 하는데 답답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도 열심히 듣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답답한

    가운데 있는데 그 답답함의 근원이 뭐냐? 하나님이 얼굴을 안 보여 주는 거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뻥 뚤려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러니까 지나온 신앙생활의

    내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했던 그 첫사랑의 은혜로 기도생활도

    뜨거웠는데 지금 나의 이 답답한 상황에서 하나님 붙들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영혼이 예전의 나의 그 때와 비교해 볼 때 그 답답한 가운에 있는 것을 먼저

    호소하기를 마치 하나님이 숨어 있는 것 같고 나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간절함의 스며들어가 있는 내용 안에는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교제와 하나님 안의 만져짐이 있는 어떤 은혜를 누리는 기쁨을 회복하고

    싶다라는 소망을 오히려 답답함을 표현하면서 사실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이것이 회복되면 다른 것은 다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인이 하나님 앞에 답답해야 되고 또 기도해야 되는 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모든 환란과 고통에서 이길 수 있는 이는 근본적으로 내 영혼에 충만함이

    있을 때 이기는 것이고 환경이 개선되고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먼저 내 영혼에서부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그 내용이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자는 그 내용에 대한 사모함이 있기 때문에

    답답한 줄 알아야지 오래 지나다 보면 만성이 되어 신앙생활이란 다 그런 거야,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돌아보면 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추하고

    또 나아가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또 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수록 순수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 게 되는

    것이다.

    지난 번 가정교회 목회자 몇 분의 나눔 가운데서 나온 얘기 중 똑같이 동감한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또 성도들이 목사님을 언제 가장

    따르느냐, 목사의 권위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라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면 목사님이 잘해주면 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결론은 그것보다도

    사심 없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몸부림칠 때,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의 모습이 성도들로 하여금 신뢰가 될 때 무슨 말을 해도 목사님 말을 다 따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회개하기를 우리가 사심이 있어서구나 라는 결론이

    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맑아지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라는 그 마음에서 어느 날 보니까

    예전에 은혜 받았을 때의 신앙생활할 때는 이것저것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나님

    이라면 두말없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뭐가 많이 끼여져

    있어서 혹시 하나님 앞에 두 마음을 품고 있지나 않는지? 그래서 오늘 첫 번째

    하나님 앞에 얘기하기를 “하나님! 하나님 앞에 그런 은혜의 자리에 다시 들어

    가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을 얘기하고 있다. 이게 이제 우리의 지금 상황이

    라고 생각한다. 즉 “언제까지 내가 걱정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가 날마다 슬퍼

    해야 합니까?“ 라고 자신의 현실의 상황에 근심 걱정으로 눌리워 있는 심리적이고 내면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갈 때 언제는 걱정꺼리가 없을 때가

    있었느냐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염려꺼리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염려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직도 근심하는 삶의 모습에서부터 벗어

    나지 못하고 있는 삶의 자세와 스타일을 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제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님! 내 수준이 이렇게 매일 걱정만 하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라는 말은 걱정꺼리를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걱정꺼리가

    있어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 수준으로 내가 올라가야 되지 않겠

    습니까?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걱정과 염려하는 내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하는

    그 마음의 표현이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자기를 힘들게 하는 주변의 원수들이 있고

    또 비웃는 사람들이 있어 하나님 앞에 슬퍼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를 못해서 비웃음을 사면 어떻게 합니까? 라는

    것이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친척들 앞에서 좀 좋은 모습으로 보여 주고

    싶고 또 좀 덕이 되고 유익이 되는 모습이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할 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면 우리의 마음에 답답한 마음이 있지를 않느냐,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아서 사는데 그 분한테 예수 믿어서 좀 사는 것에 대한 변화와 감사함을 드리고

    싶은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지금 이렇게 답답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분이 가지고 있는 답답함을 지금 3 가지로 묘사했지만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적극적인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 딱 모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3절 4절 중간에 나온다.

    이것이 시편에서 얘기하는 기도의 아주 중요한 실질적인 내용이다.

     

    첫 번째 내용은 “ 하나님 ! 나에게 좀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돌봐 주십시오” 하는

    기도다.

    :3 하나님! 나를 보시고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오 주님!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 눈을 밝혀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음의 잠을 잘 것입니다.

    라고 얘기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도와달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눈이 밝다는 것은 구약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건강이 약해지면

    시력이 희미해지다가도 회복의 증상이 나타날 때가 눈이 밝아지듯이 영혼의 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때에 나타나는 회복의 상징이

    뭐냐 하면,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는 거다. 그래서 바른 분별력, 즉 무엇이 가치가

    있고 없는지, 그러니까 정말 기뻐할 것을 기뻐할 줄 알고 슬퍼할 것을 슬퍼할 줄

    아는, 볼 것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보지 말아야 될 것을 보고

    봐야 될 것을 안 보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상태가 기쁨이 있을 때는 감사꺼리가 더 많이 보여지는데 낙망이 되어 있을 때는 불평꺼리만 보여

    지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에 들면 옛날에 좋았던 것은 하나도 안

    보이고 (그때도 나쁜 게 있었는데 )나쁜 것만 보이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도,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여기서 눈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가치관의 영안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입해 달라고 직접 기도응답을 요구하면서 내 눈을 밝혀 달라고

    이렇게 호소하던 사람이 5절, 6절에 가서는 감사와 찬양으로 확 변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입니까라고 답답함을 호소하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느냐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전환점이 되는 곳이다. 요 전환점을 경험할 때까지의 그 시간이 바로

    기도의 시간이라는 것이고, 그 기도의 시간이 바로 전환점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기도하러 올 때에는 답답한 마음으로 왔지만 기도 끝나고 돌아갈 때는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더라, 그러니까 뭔가 들어 올 때와 나갈 때가 달라져 나가는데

    그 달라져 나가는 전환점이 뭐가 되느냐, 바로 우리의 기도시간에 바로 그런 전환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도 시간에 뭐가 있어서 그렇게 전환점으로 가져오느냐

    :5 그러나 나는 주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습니다. 내 마음에 주님을 기뻐합니다

    ............. 라고 그의 신뢰를 고백하고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은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라는 부르짖음을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 중에

    있을 수 있고 기도 중에 응답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기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 가운데 불안했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과정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드리는 그 마음의 용어를 바꾸어 처음에는 “언제까지 입니까?” 이렇게 갔다가 하나님이 쓱~ 믿어지면서 그 다음의 기도할 때는

    하나님! 이 때 오니이까? 라는 변화된 기도를 드렸으면 한다.

    늘 기대하고 기다리고 사모하고 포기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뢰하는 표현이 “하나님! 이 때

    오니이까?“ 이런 기도가 남송교회의 2014년도의 기도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때가 되었습니까?” 이 말은 그만큼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강렬하게 부르짖고 있다는 전제하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해주시기를 바라는 그 심령이 끓어

    올라감에 최고조의 고백이 “하나님! 이 때 오니이까?” 그런 아름다운 고백이 신뢰

    속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 ! 언제까지 입니까?” 라고에서 출발했다가

    “하나님! 이 때입니까?”라고 마무리 하는 그런 축복의 자리로 우리가 끌어올라져가는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론의 말씀을 보면 기도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언제까지라고 절규하면 최악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고 기도 중에 감사와 찬양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도다. 그래서 이제 두 가지 단어로 기도하면 좋겠다.

    언제까지 입니까?라고 출발했다가 이제는 이 때 입니까?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라고 담대하게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이 많을수록 집중도가 높을수록

    이 때 입니까? 라는 것이 담대하게 용기 있게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이 없고 낙망하고 포기하고 기대감도 없는 사람이 이 때

    입니까? 라고 나올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오늘 이 시편의 내용을 출발하면서 바라기로는 언제까지 이 상황이

    안 변할까라고만 생각했다가 아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가 있는데 그 때가

    혹시 오늘일까, 혹시 이 때일까, 하는 그런 영적인 기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4월2일구약개관설교(136)시편(2)유은산 정효선 2015.03.12
    2014년3월19일구약개관설교(134)욥기(4)유은산 정효선 201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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