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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4월30구약개관설교(138)시편(4)유은산
    정효선 2015-04-13 18:32:43 72

    구약개관설교(138)

    시편(4): 시편 80편

    제목: 공동체(이스라엘)의 탄식 시

     

    1. 시편 80편“우리를 회복케 해 주소서!”

    3,7,19절이 후렴처럼 앞의 내용들을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하면서 중심 주제가 됨

    1-2절 : 하나님을 부름과 간구

    * 하나님께 대한 세 가지 속성이 점차적으로 상승되어 나감

    1. 목양하시는 분 : 보호하고 양육

    2. 인도하시는 분 :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는 그림

    3. 좌정하시는 분 : 온 땅을 다스리시며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

    4-6절 : 탄식의 부르짖음

    * 언제까지 (4절) : 고난의 인내의 관계를 절박하게 표현

    * 눈물의 떡(5절) : 고난이 어느 특정 시점이 아니라 일상화된 지속적 고통

    8-17절 : 이어지는 탄식의 내용들과 신뢰의 고백

    * 신뢰의 고백을 함께 함 (8-11절) : 과거 구원을 기억하시고 다시 세워 주소서

    * 왜? (12절) : 하나님께 탄식하는 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우시고 쓰러뜨리는 모든 일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

    을 인정, 고백

    * 다시 포도나무를 찾아 주시어 소생시켜 주시기를 (14-17)

    2. 후렴구 (3,7,19절)의 확신의 내용, 민수기 6:24-26 아론의 대제사장 축복기도

    * 얼굴을 비추소서 : 관심과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는 것

    은혜의 적용은 그들의 환란이 끝내도록 큰 능력을 그 지위

    에서 발휘하심.

    평강의 은혜 : 회복이 그들로 온전한 삶의 형태로 되돌려 놓을 뿐 아니라

    풍성하고 조화로운 삶

     

    결론: 찬양의 약속이라는 특이한 서원 내용으로 마무리함 (18절) : 나는 찬양하리라

     

    ----------------------------<>-------------------------------

    주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도했다라고 되어 있다.

    3절, 7절, 19절은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후렴구이다.

    3절은 1절, 2절의 내용을 마무리 짓는 내용이고 7절은 4절, 5절, 6절까지의 내용을

    마무리 짓는 내용이고 19절은 이 시 전체를 후렴구처럼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이다.

    배경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의 탄식시라고 일컬어진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난 다음에 북쪽 이스라엘이 B.C 73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나라 전체가 멸망당하면서 다 노예로 잡아가고 남겨둔 사람은

    아주 하층민들만 남겨 놓고 그 땅에는 다른 민족들을 데리고 와서 혼혈정책 하에

    결혼시켜서 낳은 사람들이 곧 사마리아인들의 슬픈 비극인 것이다. 그런데 그 때까지 멸망당하기 전인 남쪽 유다로 북쪽 난민들이 내려가서 같이 하나님 앞에 탄식

    하면서 부른 시가 이 시편 80편의 내용이다.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 가운데 속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아 노래 소리는 그치고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이 시의

    몇 군데서 표현을 하고 있다.

     

    교안을 보면 탄식의 부르짖음이라고 되어 있다. “언제까지” 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온다.

    :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언제까지 화를 내시렵니까?

    언제까지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저버리시렵니까?

    즉 고난을 참을 수 있는 인내의 한계가 벗어났다라는 뜻이다. 죽을 것같으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것이다.

    : 5 그들은 날마다 눈물로 밥을 먹으며 사발 가득한 눈물이 그들의 마실 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어느 특정 시점이 아니라 일상화된 지속적인 고통으로 그들 마음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내용이 그들의 고난의 큰 내용인가?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게 8절부터 17절까지 연결된 내용인 것이다. 결과부터

    본다면

    : 6 우리는 이웃들의 다툼거리가 되었으며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라고 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격멸하고 우습게 여기고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모든 것이 완전히 땅에 짓밟혀졌습니다. 자존감도 없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 소망도 없고 하는 상태 가운데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뭐냐라는 것이

    8절부터 비유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이 건져내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시고 그 다음에 가나안 땅에서 한 나라를 만드셔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남쪽 이집트에까지 그런 큰 제국의 다윗 왕국을

    이루었던 일연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내리셨던 역사를 비유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8 주께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 다른 민족을 쫓으신 후에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을 통하여 일곱족속 을 다 쫓아내시고) 그 땅에 그것을 심으셨습니다.(그리고 그것을 심었다고 그런

    다)

    :9 주는 그 포도나무를 위해 미리 밭을 갈아놓으셨습니다.(우리가 기대할 것은

    사실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인도해 나가실 때 우리가 밭을 가는 게 아니라 미리

    하나님이 갈아놓은 밭에 우리를 옮겨 심으면 거기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이다.

    :9 ...... 그래서 포도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온 땅에 펴져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10 포도나무 잎새가 큰 산들을 덮고 그 가지가 백향목처럼 뻗었습니다.

    :11 그 뻗은 가지는 지중해에 이르고 그 넝쿨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내용이 뭐냐하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기들이 받았던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이 뿌리내리게 하시고

    꽃피웠던 것들을 이렇게 회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도하신 것 안에는 어떤

    삶의 질과 기쁨이 있었는가 하면 포도가 알알이 열려 풍성하게 은혜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포도밭을 둘러싸고 있는 담을 헐어버려서 지나가던 짐승들이 헤치고 다 가져갔다는 것이 바로 지금 얘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재앙과 포로로 잡혀간 것을 비유로 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2 그런데 주는 어찌하여 담을 허무셨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마다 모두 포도

    열매를 따 먹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망하기까지 아람한테 당하고 블레셋 사람에게 괴롬당하고, 앗스르에게 당하고 하는 이런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3 산돼지가 포도 넝쿨을 짓밟고 들 짐승들이 그 열매를 다 먹어 치우고 있습니

    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어서 우리에게로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 보소서

    이 포도나무를 살펴보소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즉 지금 이 사람의 제일 괴로움의 핵심은 그 큰 재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역사를 되돌려 버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로서 가장 큰 가치는 뭐냐, 하나님이 애굽에서 건져내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어서 그 나라를 통하여 복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복된 통로가 되는 그 사명이 있기에 그 나라는 존재했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고 그 사명이 활짝 꽃피웠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 사명을 거두어 가버리셨으니 하나님의 부름이 철회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편 기자가 제일 가슴 아파하면서 탄식하는 것은 우리의 살아

    갈 소망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이 있는데 포로로 잡혀 가버렸으니까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사용하려던 것을 하나님이 손을 놔버리니까 사람들 앞에

    짓밟힘을 당하는 맛 잃은 소금처럼 되어 버렸고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의 제일 답답함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이 땅에 베푸시려는 큰

    축복의 내용으로 존재할 때 그것이 나도 지킴을 받았고 또 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오래 참아 주셨고 멸망치 아니하고 기다려줬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보니까

    하나님이 놓아버리신 것같다는 것이다.

     

    절망의 밑바닥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내가 쳐다 볼 소망이 없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추슬러서 뭔가 미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만이 있다면

    지금 상황과는 상관없이 나는 다시 주님을 쳐다 보겠습니다는 것이다.

    출애굽으로 일차적 소망이 이루어졌음에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맛봤는데도 그 부르심에 따라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다

    빼앗겨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뜨려진 것을 보고 지나가는 이방인들이 조롱하는 그래서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 전 보다 도리어 그 소망이 사라져버려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스라엘의 탄식의 시다.

    그래서 이 시인은 그 아픔의 심정으로는 찬송을 못 부르는데 “하나님! 다시 찬송을

    부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다시

    찬송을 부를 수 있느냐, 반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큰 방향성

    속에서의 내용이다.

    출발이 1절의 내용인데 하나님에 대해서 3 가지 단어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내용에 걸 맞는 명칭이다.

     

    :1 이스라엘의 목자 되신 주여, 우리에게 귀를 기울어 주소서 주는 요셉의

    자손들을 양 떼같이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주는 날개달린 생물인 그룹들

    사이의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1) 이스라엘의 목자 되시는 주

     목자는 목양하시는 것,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 것,

    하나님! 나를 다시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이, 독수리가 그 날개 위에

    새끼를 얹고 나르듯이, 어미가 그 새끼를 품고 있듯이, 우리를 다시

    보호하시고 양육해 주십시오.

    (2)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양 떼같이 )

    이 인도는 있는 길을 찾는 인도가 아니고 길이 아닌 길을 헤치고

    나오는 인도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 인도하신 그 길은 홍해를

    가른 인도하심이고 광야를 인도하실 길이고 불뱀에 물려 죽을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치유하셨던 인도하심이다.

    마실 물이 없을 때 반석을 깨서 인도하셨고 없는 길도 만드시는

    분이셨고 굽은 길도 펴신 분이시다.

    (3) 그룹사이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다시 가슴 벅차오르는 내용이 되겠다. 현실을 바라보면 탄식과 절망

    속에 갔다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가슴이 뛰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목양하고 먹이시고 한 나라가

    광야를 건너고 홍해를 건너고 하다가 이제는 우주 위에 좌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1절에 나오는 “날개달린 생물인 그룹” 이라는 뜻은 천사들의 종류 중에서 경호원의

    역할을 하는 천사들을 말한다. ‘스랍’이라는 이름의 천사들은 성가대이다. “가브리엘” 이라는 천사들은 메신져이다.

    이스라엘의 성소에 가보면 천사들의 그림이 있는데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경호원들이 있는 곳에 왕이 있듯이 여기는 하나님이 좌정하시는 곳이다라고 할 때 “그룹”이라고 그런다. 즉 온 세계 위에 그러니까 그룹 위에

    주님이 앉으셨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조정하시고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 3 단계를 우리가 희망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실제적인 우리의 삶 가운데

    속에서 보호하시고 신앙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온 세상을 지금도 주님이 다스리신

    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가 유일한 소망의 근거를 두는 자만이

    그 다음 고백이 가능한 것이다. 3절,7절, 19절의 후렴구가 되는 것이다.

    “ 오!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쳐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교안을 보면 민 6: 24-26절에서 나오는 아론의 대제사장적 축복 기도에 나오는

    내용이다.

     

    민 6:24 여호와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고 너를 지켜주시고

    :25 여호와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너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빈다.

    :26 여호와께서 너를 내려다보시고 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개역 성경에는 “ 주께서 내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다. 주의 은혜의 얼굴의 빛을 보좌에 앉으신 이가

    우리에게 얼굴이 마주칠 때 거기에 희망의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실 때 진정한 은혜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한다라고 그러셨는데 이때의 은혜가 뭐냐,

    그들의 환란을 끝내는 큰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픔을 잊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상세한 큰 내용을 허락하셔서 다시

    노래하겠금 하셔서 온전한 삶의 형태로 되돌려 놓을 뿐만 아니라 풍성하고 조화로운 삶으로 하나님이 만드실 것을 그가 소망하는 것이다.

     

    바로 3절, 7절, 19절이 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로

    비추시고 그에게서부터 나오는 의로운 광선이 치유하셔서 외양간에서 나오는 송아지처럼 뛰놀게 할 것이다 (말라기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주의 은혜의 빛이 우리에게 비출 때 그럴 때 “나는 찬양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마지막 날의 영광스럽게 하나님께서 다 마무리하실 텐데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라도 그 일을 이루실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찬양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라도 나는 찬양하겠습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이런 역사 가운데 이루어

    주심을 믿음으로 표현하는, 우리의 신뢰의 표현이 되는, 그런 찬양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예배 때 부르는 찬양이 절망 가운데 노래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세상

    노래는 안 나오지만 찬앙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은혜를 바라보고 이 소망이 있음을 인하여서

    그리고 여호와로 인하여서 우리가 찬양할 수 있는데서부터 우리의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이 만져주심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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