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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5월7일구약개관설교(139)시편(5)유은산
    정효선 2015-04-13 20:36:17 68

    구약개관설교 (139)

    시편(5):시편 8편

    제목: 찬양시

    *시편 8편 “사람이 무엇이기에!”

    1절과 9절이 괄호처럼 전체 내용을 감싸고 있으며 대표자와 청중이 화답 송

    1. a절 : 하나님 찬양 (서론)

    찬양의 방향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피조세계로 향하여 나감

    : 사람을 서술하기 전에 그를 만드신 이가 어떤 분인지를 먼저 고백함으로

    진정한 인간 이해는 만드신 이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함을 가르치고 있음.

    : 인간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런 분이 만들었다면~~

    1. b-8절 ; 하나님의 창조(본론)

    b-2절: 약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 방어 능력이 없는 연약한 자의 대표인 젖먹이. 어린아이

    : 그들의 입술에 있는 그 하나님이 가장 강한자로부터 보호 제압하심

    3-8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 하늘을 지으신 이가 인간을 기억하시며 보살펴 주신다 (3-4절)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의 두 가지를 늘 기억하자

    첫 째 , 연약한 자의 입술에 부르도록 주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이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신다.

    둘 째, 하늘을 지으신 이가 기억하시며 돌보시다 고귀한 위치로 세우시는 은혜로 주셨다.

    : 피조물의 위임 통치자로서의 위치를 피조세계에 세워주셨다 (6절)

    9절: 하나님 찬양 (결론)

     

    결론 : 창조주의 영광과 인간의 고귀함은 같이 가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의 출발은 이렇게 고귀한 것이

    였다. 그리고 진정한 구속은 그런 자리로 회복됨으로 인간은 홀로 버려진

    존재나 자신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영광스런

    대리통치자로 봉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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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구절을 가사로 해서 만들어 놓은 찬양이다.

    :1 여호와 우리 주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1절 맨 앞과 9절 맨 끝이 같은 내용으로 해서 이 두 개를 괄호식으로 싸고 있다

    그래서 이 내용으로 시작해서 이 내용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온 땅에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그 이유가 뭔가를 두 개의

    절을 괄호식으로 싸서 그 안에 이유의 내용을 담아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찬양할 때 찬양할 수 있는 가장 큰 내용과 찬양하는 자가 얼마나 복된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으로 대표적인 찬양시라고

    일컬어지는 시이다.

    그러니까 시작이 이런 것이다.“온 세상의 정말 유일하신 지존자” 즉 온세상을

    만드신 이는 유일하게 그분 밖에 없다라고 생각을 하면은 지존자라고 일컬어지는 맨 위 정점에 있는 그분을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분을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축복인데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들도 아깝지 않아 당연히 드려져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면 당연히 기다려야 할 것이기에 천문학자 동방 박사들이 특별한 별들의 나타남을 보고 거의 보름동안을 걸어서 특별한 사람이 태어났나 보다 싶어 별을 따라 왔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보물을 가지고 인류역사의 큰 영향을 끼칠

    분이 태어난 역사적 현장에 가서 경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간직할만한 소중한 행보였다.

     

    그래서 시편 8편의 시작은 찬양의 방향이 먼저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서부터 출발을

    하고 있다.

    :1 여호와 우리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주님께서 하늘 위에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두셨습니다.

     

    이렇게 출발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 인간의 가치 위치의 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미술 작품도 누가 그렸느냐의 그 이름 값으로 매겨지듯이

    중요한 것은 작품에 붙은 이름이다.

    오늘 인간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우리들의 위치를 “하나님이 지으신 그분”이렇게

    붙인다면 우리의 가치가 달라진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사람을 서술하기 전에 만드신 이가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고백함으로

    진정한 인간에게는 만드신 이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런 분이 만들었다면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다. 3절부터 8절을 보면 그분이 만들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비교하여

    내용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3 주님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하늘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자리를 정해 준 달과 별들을 생각해 봅니다.

    도시에서는 하늘을 바라봐도 별이 몇 개 안 보이는데 특별히 바닷가 쪽으로 가서

    밤에 누워 있으면 쏟아질 것같이 광활하다. 그 별들이 자기 궤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광활한 자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은 너무 티끌만큼 작구나라는 생각이 거대한 자연이나 만들어 놓으신 것들의 위대함을 볼 때 사람의 마음에 드는 자연스런

    심정이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 광활한 것들은 손가락으로 이렇게

    만들었는데 너 자신을 볼 때는 우주 속의 미아와 같고 티끌 같이 여겨지지만

    하나님은 너를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것이 4절 말씀이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는 사람을 돌보아 주시는지요?

    그러니까 뭘 대조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연주의에 빠지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나 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별 볼일 없이 보이고 무력하고 자궤감이 들 수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가 막힌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신 이가 너를 마음에 두고 지켜 돌보시는 것을 아느냐라는 것이다.

    : 2 주님께서는 어린이들과 젖 먹는 아기들이 주님께 찬양을 올리도록 하셨습니

    즉 방어 능력이 없는 연약한 자, 공격으로부터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그런 자들을

    일컬어 “어린이들, 젖 먹는 아이들”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 그 입술을 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동시에 가장 강한 자가 그를 제어하려는 것을 방어하시고 돌봐주시는 그런 구원의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 2 .........주님께 대항하는 원수들과 적들과 보복하려는 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서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이 상대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하면 가장 연약한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돌봐주시는 것이 세상과는 다른

    점인 것이다.

    세상은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 없는 자가 죽겠다고 외치는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불쌍하다라는 정도지 그것에 대한 의무감도 내용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2절의 내용을 보면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는 자의 입술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그 내용을 하나님이 돌봐 주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교안을 보면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의 두 가지를 우리가 기억을 하자라고 그런다.

    (1) 연약한 자의 입술에 부르도록 주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이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다.

    (2) 하늘을 지으신 이가 우리를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은혜

    그렇다면 티끌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를 그 모든 것을 만든 이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라는 명확한

    증거가 바로 내가 하는 일에 너도 참여시키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녀가 유업으로 받는 것이어서 에덴동산을 맡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지으신 것들의 위임통치자들이라는 것이다. 마치

    회사의 회장인 아버지가 그의 아들 사장에게 그룹계열사를 맡겨서 훈련시키듯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고단하거나 피곤하거나 상황자체가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을 너희의 삶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의미이고 가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결코 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일단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이 주신 당신이 행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모습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뭘로 채워도 인생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이 이런 의미와 가치를 따라서 내가 살아가는구나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그 고백이 나와야 이게 정상인 것이다. ‘

     

    반대로 살수록 허무감을 느끼고 세상 즐거움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만족이

    안 되는 삶,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 이런 삶은 뭘 간증하느냐 하면 원래

    그가 누릴 수 있는 정상적 위치에서 그 만큼 떨어져 있다라는 공허감이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공허함이 깊어질수록 원래 채워져야 하는 깊이와 내용은 그 만큼 더

    영광스러운 게 많다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온 세상을 다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이 부럽지만 그 사람이 행복하냐,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은 그것 자체가 아니라 오늘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을 따라 자기의 마음 가운데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두시고 또 나를 돌보시고 계시고,

    나를 통하여 내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아가는

    자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반대급부로 주시는

    축복이 행복감이요, 만족감이라는 것이다. 감사가 있고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시편 23편 맨 마지막 절에 얘기하듯이 “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고

    영원토록 주의 인자하심이 날 따르리니“ 내가 지금 이렇게 구하는 게 너무 좋으니까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는 그 소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오늘 나를 돌보고 있고 마음에 두고 있다라는 것을 하나님이 확인시켜주는 방법이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나를 부르시고 참여하게 하시고 그것이 뭔지를 점점 알아가게 하시고,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조금씩, 조금씩 하다가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그 일을 먼저

    하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 하는 것이고 그 일에 깊이

    들어갈수록 하나님이 일하시는 지혜와 능력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하고 그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 곧 온 우주와 창공과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이 현재 나를 돌보고 계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바꾸시는 것이다.

     

    :5 주님께서는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 머리에 영광과 존엄의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왕관이란 왕이 쓰는 것인데 다스림을 뜻한다. 우리들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심는 그런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다스림이다.

    :6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에덴동산을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우리의 각자의 삶의 영역이다.

    가정의 영역이 있고, 자녀의 영역, 교회의 영역도 있는데 자기가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삶의 영역들이 바로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사명이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하늘을 지으신 그분이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의 하나의 증거품

    이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제일 괴로운 자리는 보직해임이다. 책상 하나줬는데 일감이 없다. 못 견뎌

    나가는 것이다. 인생을 그렇게 살다 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이 땅에 우리의 인생이 와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아무 것도 안하고 가는 인생이 제일 억울한 인생이라고 그런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느냐 보다 이제

    예수를 믿었으니 빨리 천국가면 좋겠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도바울의 표현을

    보면 “내가 주와 함께 하고 싶으나 이 땅에 나를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런 의미와 가치라면 하나님이 이 땅에서 너의 은사가 필요하니 너는 좀 더

    있다 와야겠다“ 하신 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도르가라는 여인은 과부들이 너무 힘든 삶을 사니까 옷도 지어주고 먹을 것도 해주고 돕다가 죽었는데 그 여인들이 베드로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보내서 도르가를 살리셨다.

    마치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렸으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베드로를

    들어 쓰셔서 그 죽은 여인이 생전에 은사를 발휘하면서 보여줬던 그런 사람이 그

    교회에 필요로 하니 너는 좀 더 있다가 오너라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건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 시편 8편에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가장 큰 기쁨이 뭐냐할 때 지존하신 그분을 안다면 우리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지느냐, 또 하나는 그분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어떤 증거로 확신하느냐 하면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가르쳐 주고 같이 일하자라는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영광일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당하는 일로 인하여 사도들이 그런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으신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찬양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팔복의 마지막 말씀에 너희를 핍박하고 고난을 당하게 하는 자가

    있으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있는 너희 선지자들도 그런 일을

    당했느니라. 지금 당하는 고난이 그날에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보는 시각을 완전히 달리해서 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런 힘든 일이 있습니까

    가 아니고 이게 하나님이 돌보시는  이런 은혜의 자리로 부르신

    것이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우리 자신의 존재의 위치를 그렇게

    잡고 하나님께 충성하여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6월4일구약개관설교(140)전도서(1)유은산 정효선 2015.05.16
    2014년4월30구약개관설교(138)시편(4)유은산 정효선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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