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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월 11일 구약개관설교(141) 전도서(2) 유은산
    정효선 2015-07-21 23:12:17 67

    2014년 6월11일 구약개관설교(141)전도서(2):전도서3:1-11

    1.삶을 좌절케 만들었던 한계에 대하여 다르게 생각하는 전환점(3:1-11) : 한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전환점(전도서에 하나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등장)

    : 인성과 삶에 대한 하나님 없는 관점과 하나님 있는 관점의 근본적 차이점 (하나님 없는 인생과 하나님 있는인생)
    : 사람은 어떤 존재로 지음 받았는지 알때 비로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 하나님을 인정하고 난 후 근본적인 4가지 질문과 대답(신앙인의 중요한 문제)
    : 첫번째 질문
    하나님은 아름답게 다스리는 뜻이 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 두번째 질문
     하나님의 뜻에 절대 주권을 가지고 행한다면 우리는 꼭두각시데 불과한가?

    3.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전도서 12:13-14)
    :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것을 전제로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 계명의 형태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를 실제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능이 아니다.

    결론 :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그 한계가 오히려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분의 뜻을 알려주시는 만큼 충분히
    알 수 있을 뿐더러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삶의 자세로 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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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개관 설교(141)
    전도서(2)
    전도서3장 1-11

    전도서는 전체의 주제가 기독교 철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가 어디있는가?

    전도서의 말씀을 잘 깨달으면 구체적인 어떤 부분은 우리의 지식이 부족할지 몰라도 그 지식의 모든 결론에 이르는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기 때문에 수백년 수천년동안 쌓아온 세상의 모든 철학들을 다 통들어서도 이 내용은 가질 수 없는 내용이다.

    일자 무식한 산골 할머니라도 이 전도서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잡고 그렇게 살아왔다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잘 산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 수있는 축복된 내용이고 글을 못읽어도 그 지혜로 이 내용이 머리속에 잘 정리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들이 부닥쳤을 때 한마디 한마디 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로 얘기할 수 있는 축복된 지혜로운 삶의 자리로 들어가는 그런 모든 내용의 사실을 모아놓은 말씀이다.

    1장에서 2장까지의 큰 내용은 사람을 좌절케 만드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나 상황이 됬든지 간에 이젠 내 인생이 끝이다라고 할만한 큰 어떤 재앙과 실패와 좌절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에 나타나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생의 의미와 재미가 없는
    거다. 돈도, 쾌락도 자식들도 잘되고 누릴 것 다 누려봤지만 이렇게 사는거라면 인생이라는게 뭘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많이 가져도, 또 너무 없어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또는 건강을 잃어서 아니면 죽음을 눈 앞에두고 있는 상황에 들어가 있다라고 여겨질때 그분들한테 뭐라고 권면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생이란 절망과 좌절케하는 것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3장 1절부터 들어가보면 그런 상황에 놓여있을때 하나님 없이 생각할때는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 그 상황이 완전히 반전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그걸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즉 기독교는 절대로 감정 덩어리가 아니라 감정을 수반한다.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온전하게 만드는 지성적 생각이라는게 있다. 그리고 지성적 생각이 만들어내는 지성적 감정이라는게 있다. 딱딱하고 건조한 생각과 사상에 이르는게
    아니라 거룩한 사랑, 그러니까 의지적 사랑이라는게 있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3장 11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것이 때가 있는데 그때를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라고 되어있다. 즉 때를 따라 아름답게 행하셨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는 인생은 반듯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때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한 좌절과 허무와 실패로 이제 끝이다라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가지고 얘기를 할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생각하면 그건 끝난 거지만 하나님 안에 들어오면 끝난것 같은 인생을 하나님은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신다는 것이다. 이럴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고 그래서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할 은혜도 경험하게 되고 그리고 이여져서 사명까지도 연결되는 아주 소중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서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나는 죄인중의 궤수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거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일로 스데반을 첫번째 순교자로 만들어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이다. 나중에 그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야 스데반을 죽이기까지의 그가 가졌던 그 생각 그 사고
    굴레 속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던 자기의 구조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생각하고 생활할 때의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나의 그 상황이 극복되고 그 상황의 뜻을 알고 깨닫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 치유 되는 것으로 그 안에서 내가 온전해지는데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아니하시고 오히려 그걸 겪은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더
    영광스러운 사명의 자리에까지 적극적인 도구로 아름답게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큰 지혜와 능력 가운데 들어 온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모세만해도 모세가 태어났던 시점에는 남자 아이로 태어나면 물에 빠져 죽게 되는건데 그 방법을 그대로 이용해서 모세는 왕궁으로 쭉 들어가는 거다.
    모세가 그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망하는 방법인데, 그러니까 망하는 것으로 나에게 다가왔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또 홍수로 다 죽는데 오히려 그 홍수 때문에 배에 타고 있는 것이 사는 방법인 것이다. 홍수가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수가 전재 되는 순간에 배는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기가막힌 것은 적대자들은 이런 방법이 죽이려는 방법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살리려는 방법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이다. 그것의 최종 크라이막스가 십자가의 자리인 것이다.
    사탄과 대적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관점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연약한 자리다. 하나님 없이 생각해 본다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미약하냐, 그런데 온 세상의 구원을 이루시는 일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전도서에서 첫 1부에서 얘기하는 것이 혹시 우리들 가운데 이것이 나를 좌절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 있다라고 생각을 한다면 꼭 기억하라.
    절대 하나님이 고통으로만 머물게 안하신다 오늘 이것을 붙들라 하나님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하시는 분이시다.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더구나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 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최종적 절망이라 하겠지만 우리는 이 고통을 통하여 나를 어떻게 인도하려고 그러시는지?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일들은 때를 따라 하나님이 조율하시고 조정하시는 그런 선하신 손길 가운데 있다라고 믿어지는 순간에 나의 제한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꺼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지혜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더 큰 지혜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내 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붙들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이 되는 것이고 내 수준에서 한다고는 하는데 주님의 손은 나를 붙잡고 행하시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우리 현재에서 계속 맛볼 수 있는 큰 신뢰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아! 내가 혹시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을 생각 안하고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끝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적용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는 벽으로 인하여 너무 좌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 그때 우리가 깨우쳐야 한다.
    이것을 뛰어넘는, 그리고 조절하시슨 분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 있는 인생으로 바꾸어질 것을 우리가 권면할 수 있다.

    이제 오늘부터 얘기하는 것은 3:11절부터 마지막 12장까지 나오는 제 2부의 내용인 4가지 문제를 가지고 늘 생각해야 신앙이 반듯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성장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재앙과 잘못된 것들을 하나님은 때를 따라 조절하시어 아름답게 열매맺게 하신다는 큰 믿음의 신뢰를 가진 자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4가지 중요한 내용인데 이것을 반음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도서의 특징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그러면 헛되지 않을려먼 어떻게 해야 되느냐하는 이 4가지 질문의 형태로 부정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중 하나만 같이 생각해 보자
    4가지 질문은
    (1)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모든 것을 조정하고 진행하신다 해도 내가 그걸 모르고 산다면 답답한 우리의 마음은 힘들지 않느냐
    (2) 내가 내 나름대로 모든것을 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 뜻대로 행해 놓으신 것을 어떻게 우리가 바꿀 수 없지 않느냐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이 하고
        싶으신대로 다 하신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단순히 꼭두각시에 불과한 게 아니냐, 내가 하는 것을 그러면 뭐가 있느냐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니냐
        이 질문은 굉장히 실질적이고 신앙의 토론을 하다보면 많이 나오는 질문중의 하나다.
    (3)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세상이 왜 이리 부조리하냐
        악인은 잘 되고 선인은 고통받고 심판 받아야할 자가 오히려 심판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눈 앞에 볼 때 차라리 하나님이 안계신다면 시험에 덜 들겠는데, 왜 하나님은 악한 일을 보고만 계시느냐다.
    이 질문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재의 세계만으로 볼 때는 풀 수 없는 것들이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도 수 많은 나쁜 일들이 많이 저질러지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라고 부를 처참스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좀 특이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를 좋게 접할 수 있는 어떤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셨다.
    동남아 쪽이나 아프리카 쪽은 서구 국가가 와서 기독교 국가에 의해 같은 크리스찬인데도 인정을 못 받아 노예로 팔아먹는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죽는 그런 역사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기독교라.고 그러면 억압하고 착취한 그런 앞잡이로 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먼저 들어왔던 선교사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연구해 놓은 모든것들을 다 이용을 해가지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하는데 사용했던 그런 뼈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선교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피해를 입는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선교사들을 통하여 많은 근대문명이나 교육이나 또 양반과 상놈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받았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전도서는 4장부터 11장까지 거의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이것에 대해서 뭐라고 답변하겠느냐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답변할 말을 주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해 나가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4)그렇게 알고 사나 모르고 사나 끝내는 것은 결국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만나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사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

    이상의 4가지 질문을 싹 뒤집어 놓으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하나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알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야 할 만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4장부터 몇구절만 찾아보면

    5:1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특별히 예배당으로 갈 때) 발걸음을 조심하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 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8:1 어떤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면 지혜를 깨닫는 순간에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8:5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지혜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 지를 안다.
     :6 우리가 비록 장래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해도 모든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알게 해주시는 그런 때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
    12:9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백성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르쳤다. 그는 많은 잠언을 찾아내서 연구하고 정리하였다.
      :10 전도자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으려고 힘썼으며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말을 찾으면 그것을 바르게 적어 놓았다
        (이것을 알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를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2:13,14절은 전도서의 결론의 말씀인데 결론 안에 첫번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풀고 있다. 여기에 4가지 문제를 다 푸는 게 13,14절인데 첫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고 지키라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 지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조금 더 확장을 해 보면 전도서 안에서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성경 처음부터 이 관점으로 보면 정말 놀랍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놓고 제일 먼저 축복이 말씀의 축복이다.
    그들에게  뭘 해야될지를 가르쳐 주셨다. 에덴동산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왜 만들었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안 가르쳐 준 게 아니라 꼭 알아야 될 중요한 말을 가르쳐 주셨다.
    요한 계시록 맨 마지막으로 가면 이 역사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도 가르쳐 주시고 있다. 물론 우리의 지혜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꼭 알아야할 만큼, 그러니까 너희로 하여금 영생을 얻기에 충분한 말씀을 주셨다는 거다. 즉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말씀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너희가 알려고만 하면은 얼마든지 알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이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말씀은 뭘 우리에게 도전을 하고 있느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많이 가르쳐줬건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그 말을 드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 필요함을 마음 가운데 더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거꾸로 하나님은 지혜롭게 다스려나가지만, 하나님이 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걸 알지 못한다면 너는 지금 헛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하나님이 안 가르쳐줘서 몰라서가 아니라 가르쳐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걸 모르고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냐 라고 뒤집어서 우리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 더 나아가 본다면 말을 안듣고 산다면 그 다음 어떻게 되느냐, 누구랑 말을 안하고 살면 그것은 관계가 막혔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면 얼마나 억울하게 사는 삶이냐라는 것이다. 신자가 누리고 살아야 할 큰 복은 하나님과 말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말하면 나는 알아듣고 내가 하나님께 말하면 내 가까이 귀 귀울여 들으시고 그래서 가까이 있을만한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말하고 말씀 듣는 것이 막혀져 있을 때, 관계성이 막혀저 있을 때, 제일 답답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편에 기가막힌 이런 말씀이 있다.
    시19:7-10
      여호와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고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여호와로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이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아멘!

    아것을 누리고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허무산 삶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서 이런 삶은 풍성히 누리면서 살자라고 전도자가 우리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삶이 모든 것을 지혜롭게 하시되 가장 하나님의 지혜롭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 가운데 속에 하나님과의 사이가 뻥 뚫여서 시온의 대로가 나서 고속도로가 나서 그의 말씀을 즐거이 듣고 우리의 영혼이 날마다 소생하고 마음의 기쁨을 얻는 그런 은혜의 자리에 우리가 늘 들어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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