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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6월25일구약개관설교(143)전도서(4)유은산
정효선 2015-07-22 16:40:49 27

구약개관설교(143)

전도서(4): 전도서12:13-14

 

1. 하나님을 인정하고 난 후 근본적인 4 가지 질문과 대답(신앙인의 중요한 문제)

1) 하나님은 아름답게 다스리는 뜻이 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2) 하나님의 뜻에 절대주권을 가지고 행한다면 우리는 꼭두각시에 불과한가?

3)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다스린다고 하시는데 왜 이렇게 불의, 부조리가

2. 네 번째 질문과 대답

*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버린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허무하지 않는가? 5:15-16

6:6, 11-12

7:1-4

9:2-6

*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전제 아래의 차선책인 삶의 냉소적 지혜

5:18-20, 9:7-10

* 죽음으로 끝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죽음과 하나님 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죽음을 주관, 죽음 이후의 삶의 주관)

11:9 b ,5b:-7 , 12:13-14

 

결론 :

* 하나님 없는 인생과 하나님 있는 인생 (3:1-11)

*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것을 전제로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 계명의 형태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인격적 결정이 가능, 본능이 아니다.

* 불의와 부조리를 반드시 하나님이 주인답게 멋지게 정리하신다. 그럼 왜

지금 이런 일들을 허용하시는 지는 지나가 보면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 내세의 삶의 내용을 아는 자만이 현재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미래의 삶에 맞추어서 현재의 삶을 조정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다 (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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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 전도서 12:13-14

전 12:13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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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에 나와 있는 결론부터 보면 전도서의 주제가 뭐냐 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기독교적 인생철학을 가르치는 소중한 내용이고 이 안에는 세상에서 가르치는

일반적 삶의 의미에 관한 모든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고 어떤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한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어떤 굴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계 속에

갇혀 있는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그 안에서 한계 안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은, 하나님 없는 세계는 근본적으로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한계는 하나님 없이 바라 볼 때는 좌절이고 낙망이고 고통이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어떤 내용을 보이겠지만 만약에 그 한계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그 때에 사람을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만들었을 때 그 안에 질서와 법칙과 규칙이 있지만 그것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다면, 또 심지어는

사람이 타락했을지라도, 사람이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사람이 인생 가운데 겪는

고난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 없이 생각할 때는 그 고난이 자기를

좌절하게 만들고 무너지게 만들지만 하나님 있이 생각한다면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없다면 헛되지만 하나님 있이 생각한다면

하나님 안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1부, 2부로 나누어지는데 3:1-11절까지가 2부로 나누어지는

하나님 없는 세계관에서 하나님 있는 세계관으로, 그래서 이 전도서의 구조는 아주

간단하지만 이 안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는 세계관에서 하나님 있는 세계관으로 넘어오는 것이 일차적

으로 예수를 안 믿는데서, 예수를 믿는 대로 넘어오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이

전도서의 일부라면 그 다음 3:12절부터 시작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오는 더 크고 깊은 고민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고민해야 된다. 그리고 이 고민에

대해서 인생 여정 가운데 속에서 풀어가는 과정이 믿는 사람으로서 성숙되고

심도 있게 우리의 신앙을 깊이 있게 해 나가는 중요한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가정법 형식으로 4 가지 질문을 내고 있는데 즉 “만약 뭐 뭐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형식의 질문으로 나가는데 대답은 “만약 뭐 뭐하다면? 이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교안 1번을 보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난 후 근본적인 4 가지 질문과 대답 (신앙인의

중요한 문제) 이라고 되어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그 한계와 그 상황을 하나님 쪽에서는 아름답게 다스릴 뜻이

있어도 만약에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느냐?

여기에 대한 대답은 즉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것을 전제로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지신 그 뜻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하여, 또 우주의 역사와

모든 것에 대하여 일일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 현재의 삶 가운데 속에서 내가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은 반드시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아름답게 다스려 나가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스려 나가시는 지에 대하여

어떻게 다스려 왔는지에 대해서 역사를 통하여 쭉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뜻을 가지고 결국은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해

버릴 텐데 그렇다면 나는 결국 꼭두각시가 아니냐?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의 형태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거다. 우리로 하여금

인격적 결정을 하도록, 자발적 결정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본능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다.

네가 좋아서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 마지막 선택이 바로 가롯유다와

베드로의 선택의 차이점이다. 신앙은 매일매일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신앙의 모습은 내가 매일 매일 선택하는 것이어서 예수님이 이렇게 변론한다.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매일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올 것이니라”

십자가 안 질 수도 있다. 강제로 지우는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다.

내가 오늘 하나님의 사람으로 반응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순간 순간 다양한

형태애서 선택하는 것이다. 가족간에서도 내 감정과 내 생각과 내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싶은 개 내 마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이 나에게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는 말씀에 순종할 때 계명을 순종하는 형태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다스린다고 하는데 왜 이 세상은

부조리와 불의한 일들이 횡행하느냐라는 문제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세상 모든

은밀한 일을 홀이라도 남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정리하시고 때를 따라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모독을 받으면서도 이유가 있어서 참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지금 이 죄악된 세상을 보고만 계시는가?

당신의 계획 가운데 속에서 움직여 나가시는 그 손길 가운데 참고 계시고 기회를

주고 계시고 그리고 그 악한 것마저도 사용하셔서 선한 일을 이루는 역할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악이 횡행할수록 오히려 시험들게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깊은 지혜에 대하여 이것을 어떻게 푸실까 기대를 가지고

오리려 악인의 번성하는 것을 보고 시험들지 말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그런 모든 것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은 하지만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고 절대로 넘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해 주자가 아니고

외적으로 되어지는 불의한 일들을 비난하느라고 네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놓치고

있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일을 하시는데 작지만 우리는 우리 일을 하는 그 안에서 하나님

앞에 순종해서 일을 행해 나갈 때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는데 우리를 복되게 사용

하시는 것이다. 악인은 악한 일에 쓸 용도가 있다는 것이다.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악이 횡행하는 그런 가운데 속에서도 나보고 하라는 일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도 가장 큰 일을 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성을 완전히 멸망 당하도로 작정된

게 아니드냐? 그럼에도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사 건져 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내 손으로 해야 될 일이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자비를 바라 볼 수 있는 그것을 알고

기도하는 자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50 명에서부터 열 명까지도 낮춰주시면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들으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복된 일이냐

그래서 모세가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기도할 때 가까이에서 들으시는 신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처럼 복 받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 하나님의

행해주시는 말씀으로 자기 삶의 기준과 판단을 삼는 그런 법칙을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다.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자기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이 세상 좋은 법을 다 가져와도 성경에서 얘기하는 10 계명에 따라 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름답게 했지만 그 뜻을 알지 못한다면 꽝이라는 말씀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다.

 

네 번째는 인생이 이 땅을 살다가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면은 정말 허무한 일이지 않는가?

교안을 보면 인생 무상함을 이렇게 설명 하고 있다

전5:15-16

:15 어머니 태에서 맨 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도 맨 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16 또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다. 사람이 온 그대로 돌아가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즉 헛 된 것 잡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 나오는 얘기는

더 억울한 일을 말하고 있다.

전 6:1-2

:1 나는 세상에서 또 한 가지 잘못되고 억울한 일을 본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2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와 재산과 명예를 원하는 대로 다 주시면서도

그것들을 그 사람이 즐기지 못하게 하시고 엉뚱한 사람이 즐기게 하시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요 통탄할 일이다.

:11 말이 많으면 빈 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이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

:12 그림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즉 자기가 해 놓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느냐,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나름대로 투자도 하고 했지만 죽고 난 다음에 해 놓은 것이 어떻게 될지

알겠느냐, 그래서 그 죽음이라는데로 모든 것을 다 돌려 버린다면 그 수고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전 9:2-6을 보면 다르게 살았으면 다르게 나야 되는데 모드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거다. 그래서 더 억울해 하는 것이다.

 

전9:2-4

:2 모두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착한 사람이고 해서

죄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맹세한 사람이라고 해서 맹세 하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

:3 모두가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더욱이 사람들은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

:4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 보다 낫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보여 지는 모든 상황을 지금 설명

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그 어떤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을 때 지금 얘기

하듯이 세상의 죽음이 이 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속에서도 세상적 지혜는 뭐냐, 그나마 여기서 말하는 차선책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 우리도 이런 생각을 부분적으로 하며 살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만족하지는 않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 뭐냐 하면 두 가지 차선책을 냈다는 것이다.

 

* 첫 번째 차선책은 일반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은 이 정도는 한다고 그런다 즉

초상집에 가는 것을 즐겨하라고 그런다 (7:1-4)

전 7:1-2

:1 명예가 값 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중요하다.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4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다.

 

그러니까 초상집에 갈 때마다 다시 한번 나도 저기에 언젠가는 선다 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돌아 볼 수 있고 많은 것에서부터 우리 스스로가 거기서 욕망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분명한 하나의 차선책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 두 번째 차선책은 (5:18-20) 그러니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굳이 그것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잘 쓰고 가라다. 쓰는 게 남는 것이다. 타락하고 부패하라가

아니라 잘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 답은 아니다. 햇갈리지 마라.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이 정도에서 머물라는 것이다. 그나마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5:18-20

:18 그렇다 우리의 한 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

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

이다.

:19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

에게 주신 선물이다.

:20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 세 번째 대안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 안에서 나누라는 것이다.

전9:7-9

:7 지금은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을 좋게 보아 주시니,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8 너는 언제나 옷을 깨끗하게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라.

:9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일반 사람도 같이 할 수 있는 차선책이고

이제 여기서 솔로몬이 결론을 내린다. 이 땅에서의 삶은 죽음으로 모든 게 마무리

되는 게 아니라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리하시는 그런

분명한 날이 있으니까 너의 죽음은 죽음으로 없어지는 게 아니고 너에게 허락하신

삶을 다음 단계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복된 삶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냐 하면 요11:25,26절에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를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는 그러면 육체적인 죽음이 없다는 거냐,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서 에수를 믿고 난 다음에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와 있는 그 생명은 못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살아서 생명을 받았는데 이 생명은 마지막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 그 죽음이 이 생명을 삼키지 못하는 그 생명을 가진

것이다. 생명이 죽음을 이l기는 생명이다. 이 생명의 질이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을

알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삶의 가치를 알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여기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모든 삶의 윤리적인,사회적인 형태가 뭐냐,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삶을 살수록 뭐가 나타나느냐 하면 똑같이 일을 하는데 그 일을 해야 되는 이유와

가치와 내용이 생명의 냄새를 풍기는 그런 모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점점 충만해져서 그런 것으로 극치에 이르는 게 뭐냐 하면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고전 15:51-58절을 보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죽을 몸이 새로운

영광의 몸을 입을 것이고 그때 사망이 생명에 대해서 삼킴 바 되어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생명의 질이 그렇다는 거다.

계 21:1-7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서의 마무리할 그런 놀라운 역사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죽음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삶의 가치를

가진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내가 가진 생명의 질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일에 내가 여기서 노력하고 수고한 것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일부가 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그런 삶으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을 시편은 아주 기가 막히게 표현을

했다.

시 116:15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나의 보물)

 

우리의 육신은 썩어서 약하여져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서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 삶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람이 변화되고 그 가치가 바뀌어지고, 옛날에 그렇게 인색했던 사람이, 자기 감정 대로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의 은혜를 가지고 다르게 변화하면서 생명의 질을 나타내면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그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 보고 “내 보물” 이라고, 너희는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출19:5,6)

그래서 우리는 장례식 때 이별의 슬픔은 있으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영광스러움으로 이 분이 하나님 앞에 정말 신실하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간

성도를 생각할 때 주님이 마치 스테반의 영혼을 받으실 때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그를 환영하고 받듯이 “나의 보물”이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삶은 의미 없는 삶이 아니고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고 남은

생애 동안에 우리 안에 주신 그 생명의 질과 가치를 조금씩이라도 드러내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날이 갈수록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게 복음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며,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성품은, 우리의 소망은, 갈수록 더 깊어지는 이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이 마음으로

격려하고 붙들고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7월2일 구약개관설교(144)잠언(1)유은산 정효선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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