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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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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05일 설교요약
작성자 한전희 등록일 2023-11-09 00:31:52 조회수 15

요셉의 눈물 창세기 50장 15~21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을까? 요셉이 두 번 눈물을 흘리는 상황입니다. 첫 번째 눈물은 아버지 장례식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다음에 거의 왕의 대접을 받은 40일 동안의 미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바로 왕에 준하는 60일 동안의 애곡 기간을 거치고 그리고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가서 이제 장례를 지내는 거예요. 그 장례 지내는 장면이 이렇게 표현이 돼 있습니다. 50장 10절 보십시오. 10절 그들은 요단강 동쪽 아다 타작마당에 이르러서 크게 애통하며 호곡하였다. 요셉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거기에서 1회 동안 애곡하였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레 동안의 마음 가운데 흘린 그 눈물이 첫 번째 눈물입니다. 그럼 어떤 종류의 눈물이었을까요?  요셉이 몇 살 때 아버지 품을 떠났죠? 17살 때 형들을 보러 갔다가 형들이 팔은 거예요. 미워해서. 요셉이 처음에 팔려 나갈 때, 창세기 37장을 보십시오.

 

37장 2절 보시면 야곱의 역사는 처음 17년은 아버지 밑에서 살았어요. 이때의 요셉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 눈치 없는 편애를 해서 물론 어머니 없는 자식이니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자기 서모 밑에서 또 형들 밑에서 구박도 받고 여러 가지 그러나 아버지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이때는 형들의 잘못도 일러바치고 그냥 혼자 채색 옷 입고 막 이러고 아무 그냥 생각 없이 그렇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노예가 된 거예요. 그러고 난 다음에 야곱을 다시 만났어요. 야곱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이 30살 때 총리가 됐고 7년 흉년이 있었고 2년 흉년이 된 그러니까 39살 때 다시 자기 아버지를 만난 거예요.

그럼 아버지하고 몇 년을 같이 살았는가 창세기 47장 28절 야곱이 이집트 땅에서 17해를 살았으니 그의 나이가 147살이었다. 이스라엘은 죽는 날을 앞두고 이렇게 야곱이 죽을 때에 나이와 애굽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를 설명하는데도 공교롭게도 17년이에요. 요셉이 39살 때 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17년을 아버지하고 같이 살은 거예요. 요셉이 아버지의 장례 지내는 나이가 39 더하기 17 하면 56세, 나이 56세 때 아버지를 장례 지내면서 울었다 그거예요. 그러고 난 다음에 54년을 앞으로 더 살아요. 54년 끝나고 난 다음에 110살에 요셉의 유언하는 내용으로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할 거는 요셉의 첫 번째 눈물은 어떻게 보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고 어릴 때는 지금 아버지의 품 안에서 돌봄으로 자랐지만 나머지 17년은 거꾸로 요셉을 통하여 야곱이 보호받고 있는 사람 여러 가지로 우선 현실적으로는 애굽 땅에 내려 이민 올 수 있도록 먹을 게 없는 상황 가운데 속에서 이렇게 실질적으로 필요를 채워주는 우리 노년의 어르신들하고 비슷한 거죠. 어릴 때 부모들이 다 부모 그늘 밑에 있다가 이제 어느 날 연세가 드시고 이럴 때는 요새는 우리가 책임져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옛날하고는 달리 근데 옛날에는 그랬거든요. 옛날에는 자식만 잘 키워놓으면 자기 노후는 걱정하지 안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의 아들이 되면 다행이지만 이젠 그런 생각 안 하더라고요. 자기 미래는 자기가 책임져야 참 슬픈 시대에 이제 우리가 살고 있고 이제 미국처럼 고등학교 졸업하면 니가 알아서 해라. 이제 론도 니가 알아서 얻고 취직하는 것도 니가 알아서 하고 이제 그렇게 하는데 어쨌든 근데 요셉은 그의 첫 17년과 인생의 마무리 17년을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그 시간이 참 이렇게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짠하고 또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었는데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결정적인 건 뭐냐 아버지 야곱과 유언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신앙으로 막판에 아버지와 깊이 교류하는 야곱과 요셉이 신앙의 내용을 교류하는 과정을 통하여서 그 마음 가운데 그동안에 허했던 마음을 아버지의 사랑으로도 채우고 자기가 아버지도 섬기면서 그러고 장례를 지내고 난 다음에 흡촉하게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이런 눈물을 우리가 흘렸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어르신들이 많이 있으신데 야곱과 요셉처럼까지는 안 된다 할지라도 특별히 기도하시는 어머님들 할머님들이 있으면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찾아뵈서 영적 교류를 함께 나누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냥 돌아가셨다라는 그 눈물이 아니라 이분을 통하여 내가 받은 은혜 또 막판에 하나님 앞에 영적인 동지가 되어서 나이는 차이가 나지만 영적인 동지가 되어서 소망을 함께 얘기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는 모습으로 부모를 보낸다라는 거는 엄청난 축복 세상의 부모와 이별하는 것과 신앙인이 부모와 이별하는 거는 더 격이 있고 더 달라진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소망의 감사의 눈물을 이런 분을 우리 부모님으로 준 거를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이런 이런 모습 또 이런 아들로 하나님이 키워주신 거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참 좋았어요. 이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고 기쁨의 눈물이고 근데 장례를 다 마치고 오다가 너무너무 슬픈 눈물은 두 번째 요셉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겁니다.

장례 마치고 돌아오니까 형들이 동생 몰래 회의를 했어요. 아마 베냐민은 빠졌겠죠 베냐민은 하지 않았으니까 10명이 모여가지고 야 우리 이제 큰일 났다.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혹시 동생이 우리한테 복수하면 어떡하냐 앙갚음하면 어떡하냐 왜? 자기들이 해놓은 일이 있으니까 스스로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자기들의 수준으로 생각해 볼 때는 이건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들이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거 그러면서 온갖 방법을 다 짜내는 거예요. 두 가지 방법을 짜냈어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두 가지 뭐냐면 유언장을 조작해요. 있지도 않는 유언장을 하나 만들었어요. 뭐라고 얘기하느냐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우리한테 얘기하고 너한테 전달하라고 했다. 형들 용서해 주라고 형들이 너를 팔고 널 고생질하고 못된 짓을 했어도 거기 나오는 단어가요 보통 단어가 아닙니다.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라. 이거는 구약에서 얘기하는 죄의 아주 덩어리를 얘기할 때 핵심을 이 때 쓰는 그런 단어예요. 그사람들이 유언장을 조작하면서 그 말을 하면서 요셉의 마음을 누구뜨리기 위해서 그런 단어를 일부러 쓴 거예요.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 제3자를 시켜가지고 마치 유언장을 변호사가 전달하는 것처럼 잔머리가 기가 막힌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얘기를 전달해 듣는 요셉이 본문에 울었다.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지금 이때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이제 요셉이 우는 모습을 보고 형들은 희망을 발견하고 뭐야 요셉이 우리 같은 마음이었구나.  이제 직접 가서 이 얘기를 하는 장면이  9장  요셉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닙니까? 자발적으로 자기들이 엎드린 거예요. 그들이 17살 때 요셉이 그 꿈이 지금 실현되고 있고, 스트레스 받아서 꾸는 꿈은 내가 꾸는 꿈이고 성경에서 나오는 꿈은 하나님이 꾸게 한 꿈이에요. 성경의 선지자들이 꾸는 꿈이나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꿈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거를 알려주는 꿈 플러스 다음에 내용이 나와요. 항상 요셉이 좀 철이 없어가지고 이런 말을 했을 따름이지. 형들은 하나님이 하신다는데 의식이 없고 동생이 미우니까 그 꿈이 어떻게 되냐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 꿈을 좌절시키겠다 그거예요. 마지막 장면에 자기들이 세 번 요셉에게 무릎 꿇었거든요. 첫 번째는 곡식 구하러 왔다가 요셉이 총리인 줄 모르고 처음에는 인사하기 위해서,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요셉이 자기를 밝히니까 놀래가지고 거기서 이제 엎드린 거예요.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여기서 지금 17년 후에 세 번째 엎드리면서 말까지 덧붙여요. 우리를 당신의 노예입니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는 거예요 지금.이런 말을 들을수록 형들의 입장에서는 동생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기를 낮춰서 하는 거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요셉의 지금 마음 가운데 더 안타까움과 눈물이 납니다.

 

요셉이 어떤 눈물이었을까 이렇게 막연하게 상상하는 게 아니고 요셉이 한 말과 말씀과 매칭이 돼서 요셉의 눈물은  네 가지의 내용은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흘려야 할 눈물이고 언젠가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그리고 또 어쩌면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네 가지 마음이 그리고 요셉의 이 반응하는 눈물이야말로 요셉이 지금 그저 총리가 돼서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영적인 실력으로 총리가 되어 있다라는 걸 영적인 실력으로 자기 집안을 섬기고 있는 쉽게 말하면 그냥 돈이 많고 똑똑하고 집안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니까 집안에 리더가 돼 있는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은 세상적으로도 잘 나가고 위치가 있고 돈도 많이 내고 그러면 목소리에 힘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결정하는 대로 웬만큼 되잖아요 옛날에는 그 정도였단 말이에요 근데 요셉이 지금 56살이 돼서 이때 지금 보여주는 그 표현과 내용은 껍데기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의 내면이 그의 인격이 그의 삶이 사상과 내용이 모든 사람 비록 맨 막내지만은 베냐민 빼놓고 실제로 모든 사람들을 살려내고 세워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총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가족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리더가 되는거지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친척들에게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속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요셉의 마지막 이 눈물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가 없으니까 언제든지 생명의 위협을 당할수 있다고 형들이 생각을 한 거예요.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요셉이 너무 마음이 안타까운 거예요.  요셉은 이미 그들을 용서했어요.이미 17년 전에 만났을 때 창세기 45장을 보시면 한번 보십시다. 분명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왜 안타까운 눈물이겠습니까? 이건 뭐냐 죄 지은 자의 마음의 자책감과 양심의 가책 그 정도가 아니라 야 이거 나 같으면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또 이렇게 반응을 하는 거라. 이렇게 표현할 정도면 17년 동안 살아오면서 마음의 자유함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라는 게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경제적인 두려움, 아니면 더 나아가서 내가 죽고 나면 과연 천국 갈 수 있을까 하는 믿음의 두려움도 있을 수있습니다. 근데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얘기합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 어떤 죄로부터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미 하나님 자녀로 니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여러분 우리가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 대할 때 자녀가 못한다고 해서 부모가 내치는 부모가 없습니다.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신다. 근데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그 하나님의 마음 안에 들어간 누리기보다 마치 요셉의 형들처럼 요셉은 은혜를 주고 은혜를 베풀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두려워한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두려워하듯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이 없고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나를 인도하시고 내 미래를 책임지시고 그분이 내 인생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라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마치 지금 아버지의 보호막이 사라졌으니까 혹시 야곱이 마음을 변심하면 어떡하나라는 것과 같이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인생살이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속에 내가 너를 보호하고 여기까지 내가 너를 인도한다.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오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요셉이 이제 안타까워하면서 두 번째 눈물을 긍휼의 눈물을 흘립니다. 첫 번째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거죠. 두 번째 그냥 불쌍하다 이 얘기가 아니에요. 긍휼은 뭐냐 하나님을 붙잡지 않으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거 이게 긍휼의 출발입니다. 누구나 다.

 

요셉은 어떻게 자유함을 얻었습니까? 아마 형들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요셉이 마음으로부터 형들을 용서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을 겁니다. 실제로 그럼 그렇지 않겠어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그걸 극복하는 게 더 힘들잖아요. 근데 요셉은 그걸 어떻게 극복했죠? 자기가 극복한 내용을 얘기함으로써 형들도 그렇게 극복되기를 바랐단 말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형들이 가지고 생각했던 게 틀린 게 아니에요. 세상적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걸 풀기를 바랐단 말이죠. 어떻게 풀기를 바랐느냐 요셉이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하나님이시죠.

 

본문 보십시오.19절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뭐냐면 내가 마음이 좋아서 내가 당신도 복수 안 할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이것처럼 보증 수표가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신들은 지금 날 보고 두려워하지만은 나는 내 마음대로 못한다. 왜?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내가 당신들을 해칠 수 있겠느냐 그 얘기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만큼 확실한 보장이 없어요. 근데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핑계대고 자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 형들은 믿음이 없었다는 얘기예요.

지금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자유함 요셉이 그 분노에서부터 어떻게 벗어났는가 하나님이 당신들은 나에게 악을 행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듯이 마찬가지로 17년 동안 살면서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아직도 못 만나고 있는 형들의 모습이란 말이죠. 만약에 진정으로 동생을 통하여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이다라고 경험했으면 이렇게 반응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요셉이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이 축복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이렇게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형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보다 안타까운 거는 자기들의 운명을 왜 하나님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나 하나님과 연관시키면 거기서 해결책이 나오는데,

눈믈을 흘리는 마음은 뭐냐 그들을 안심시키는 연민의 마음입니다. 세워주는 마음 ,안심시켜주는 보복 의사가 없다라는 걸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함께 바라보자고 얘기하는 거,

이제 마지막 네 번째 요셉은 답답한 호소의 눈물을 흘리며. 21절 그러나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간곡한 마음은 누가 가져야 됩니까? 형들이 가져야 되는데 오히려 간곡한 마음으로 복장이 터지면서 요셉이 그들에게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왜 그럴 수 있을까요? 요셉은 하나님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걸 해결할 수가 있는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런 마음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맨 마지막에 내가 당신의 아들들을 돌보겠습니다.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이게 내 사명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이 돼도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그 사명을 따라 내가 어떻게 내 감정적으로 못 마땅하다고 하나님의 사명을 내가 져버리겠습니까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받은 자의 자연스러운 그의 판단의 기준이 나오는 놀라운 요셉의 눈물의 내용인 것입니다.

 

오늘 요셉의 네 가지 눈물 첫 번째는 불쌍히 여기는 안타까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 그리고 그걸 안심시키는 것 그 다음에 두 번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 저 사람이 저런 상황에 놓여 있는 거 그럴 수밖에 없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지금 놓여 있는 그러니까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건 뭐냐 하나님과 연결시키지 못하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은 저렇게밖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그런 행동하는 것 자체가 불쌍하다는 거예요 지금. 그리고 세 번째는 연민의 마음에 안심, 연민의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 안심시켜주고 그 다음에 마지막 격려의 말입니다. 세워주는 그런 소망의 눈물을 헌신의 눈물을 보임으로써 요셉의 인격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충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총리로서 역할을 다했느냐 몇 백 배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어요. 다 굶어 죽는데 그의 지혜로 먹고 살게 한 거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도 70명이 내려가서 200만 명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한 민족을 이루는 그런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거야. 그 위대한 일을 이런 아름다운 그릇으로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인격처럼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처럼 그게 보석처럼 빛나는 요셉의 담긴 눈물의 모습 오늘 저와 여러분 주변에 혹시 내가 흘려주어야 할 대상의 눈물이 혹시 있을까요?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은 너무 불안해하고 하나님 없는 인생 하나님이 있다 할지라도 미래를 불안해합니다.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 믿음과 사랑과 두 번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하나님과 연관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 가운데 가지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주지 못하고 늘 노심초사하고 있는 또한 마지막으로 미래의 소망이 없이 그 삶이 일히일비하는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볼 때 또 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일 때 그리고 저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여러분 남편을 불쌍히 여기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그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 예수를 보냈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이렇게 되지 못한다라는 걸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그 다음 긍휼과 자비가 나갈 수 있는 거란 말이죠. 왜 저 사람은 저렇게밖에 못해가 아니에요 그 상황 가운데 놓이면 그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 상황 가운데 놓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도 연약한 자라서 그 상황에 어떤 죄를 저지를지 몰라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는 아주 죄악된 인간들이지만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지 우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의 말씀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여러분 주변에 지금 어떤 사람을 붙여놨는데 내가 눈물을 흘려줘야 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인생의 말년에 올수록 더 이런 눈물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 나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이런 자유함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야 되는데 오히려 형들처럼 노심초사하고 살고있지 않는지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생각하면서 요셉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삶처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는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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